서울에서 만나요_01화

by Breeze

바람이 기분 좋게 몸을 식혀주는 2월의 어느 날. 뜻은 봄이 온다는 입춘이지만 겨울에 가까운 한 해의 첫번째 절기. 그런 날이었다. 다가올 무더운 여름을 걱정하기보다 따스하고 찬란한 봄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날. 순이는 고개를 들었다.


“저 왔어요!”


“우리 막둥이 왔구나!”


바깥에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와 그를 반기는 목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부엌에서 한참을 앉아 아궁이를 바라보던 순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시큰하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일하느라 고생한 막내아들 먹인다며 명절도 아닌데 흰쌀밥으로만 밥을 짓게 하고, 절대 태우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한 시모 때문에 아궁이 불을 떼는 것부터 밥이 익을 때까지 한참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앉아있었다. 이제 슬 익은 냄새가 나니 솥을 내려놓고 뜸을 드려도 괜찮으리라. 힘을 줘 솥을 내려놓은 순이는 얼굴에 붙은 검둥을 앞치마로 닦아내며 부엌을 나선다


“형수님 오랜만에 봬요 건강하셨죠?”


“…네”


순이는 짧게 답하며 고개를 숙여 반가움을 표한다. 재학은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맞이한다.


순이의 시선에 재학 옆에 시모와 손을 포개 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련된 여성이 보인다. 여자치곤 큰 키에 시골과 어울리지 않는 양장, 흰 양말을 발목위까지 끌어올려 신었고 하얀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머리엔 삔을 꽂아 고정했다. 가끔 농작물을 팔러 시내에 나갈 때 지나가듯이 본 여자들과 같은 도시여자다. 본인과 다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봬요 형님.”


“….”


고개 숙이며 순이에게 인사하는 여성. 순이는 시내에서 만난 여성들과 겹쳐보느라 순간 대답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인다. 재학의 아내인 희수다. 결혼할 때 인사 드린다고 한번, 결혼할 때 한 번 고향에 온 적이 있으나 순이는 결혼식에서만 잠깐 본 게 전부다. 인사하러 왔을 땐 심한 감기에 걸려 나가지 못했다. 그러니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건 오늘이 처음이 될 것이다.


“자자 멀리 오느라 고생했는데 얼른 들어가자이. 순이는 얼른 밥 내오고“


“네”


순이의 시모 복순이 재학과 희수를 데리고 마당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가고 순이는 그 옆 부엌으로 다시 들어간다. 아직 밥이 뜸을 들진 않았을 테니 상을 닦고 국을 올리면 얼추 시간이 맞을 듯하다.


***


“그래....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다만 일을 여서 한다고?”


복순과 재학, 희수가 안방에 둘러앉았고 복순이 묻는다. 고집스런 인상인 복순의 얼굴에 걱정이 스민다.


“네 어머니 여기 국민학교랑 얘기됐어요. 여긴 서울과 달리 항상 사람이 부족하니까 젊은 선생 온다고 좋아하는 분위기예요.”


“근데 암만 그래도 일하기도 지내기에도 서울이 나을 낀데 느이도 이야이에게도”


복순이 희수를 가리킨다.


“이 사람도 동의한 내용이에요 원래도 애들 한번 가르쳐보고 싶어했는데 이 참에 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합창단을 맡기로 했어요.”


“사돈댁에선 딸이 멀리까지 와서 지낸다고 하는데 괜찮다고 하시고?”


“걱정 마세요 어머님 오히려 공기 좋은데 간다고 부러워 들 하세요. 놀러 오시겠다고도 하시구요. 안부 전해달라셔요.”


“그렇다면 다행이 다만…”


복순은 못내 마음이 안 놓인다는 듯이 말을 흐린다. 걱정하지 말라며 재학은 웃지만 복순은 학창시절부터 공부를 잘해 서울로 유학보내 대학까지 나온 막둥이가 시골에서 거름냄새 맡으면서 지낼 생각을 하니 영 불편한 마음이 든다. 며느리지만 서울 부잣집에서 시골집으로 시집와 거름냄새 난다고 제 남편 책잡을까 늘 불편한 손님인 희수 걱정은 덤이다. 이때 순이가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들이민다


“어머니”


“아 그려 그려 얼른 들여라이 멀리서 와서 배고프겠다”


순이가 문을 열고 밥상을 들어오려 하자 재학이 서둘러 일어난다.


“아 제가 들께요 형수님!”


“에이 됐어! 하던 사람이 하면 된다.”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문을 열고 밖에서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 순이. 본인이 하겠다며 일어나려다 복순이 말려 도로 앉는 재학, 이 상황을 그저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는 희수. 순이는 조심조심 밥상을 들고 둘러 앉아있던 자리에 밥상을 내려놓는다.


아무렇지 않은 순이의 시선에 걸린 것은 복순의 버선, 재학은 구두색과 같은 검은 양말, 희수는 흰 양말. 본인만 맨발이다.


“자 먹자 먼 길 오느라 배고팠을 텐데. 느이 형은 두어 시간은 이따가 올 것이다. 시내 나가서”


“네 어머님” “네 어머니”


순이는 괜히 한번 발을 꼼지락거려본다.


***


“어떻게 입에는 좀 맞고?”


“네 정말 맛있어요 어머니. 어머니 음식 얼마만에 먹어보는 건지 몰라요”


복순의 물음에 재학과 며느리는 물어봐 주길 기다렸다는 듯 웃는 낯으로 얘길 한다. 본인에 비해 아직 밥을 반도 비우지 않았지만 밥을 천천히 먹는 게 서울에선 세련된 행동인가.... 하고 순이는 생각한다.


“그이 찌개랑 나물들은 다 순이가 한거여. 생선만 내가 조금 부친 거고.... 너 서울 가기 직전에도 음식은 너거 형수가 거의 다 했지 뭘… 순이 음식이 우리집 음식이지


“아 진짜요? 형수님이 해주 신 음식이 이제 저 한텐 고향음식이 될 거 같아요. 어머니가 해주신 맛이랑 진짜 똑같네요.”


순이랑 재학은 기껏해야 10년이 넘지 않는 나이차이지만 본인이 엄청 어른이 된 거 같아 순이는 기분이 묘하다. 순이는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하고 있던 가지고 있던 궁금증에 대해서 질문한다


“이제 영월에서.... 일해요?”


“네 형수님 동네 상정초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기로 했어요 안사람은 거기서 합창단을 맡아서 해보기로 했구요. 이 사람이 피아노를 오래 배웠거든요 계속 애들 가르쳐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 참에 잘 됐죠.”


“그럼 집은…”


“집은 학교에서 바로 앞에 관사가 있다고 해서 거기서 지내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지내시는데 괜히 식구 늘고 그러면 어머님도 형수님도 불편하시기도 하고 저희도 그게 편할 거 같아 서요 하하”


“…”


손아래 사람이라고 부려먹거나 본인이 편해질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동서가 생기면 조금이나마 마음 붙이고 재주 없지만 말상대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순이의 기대가 깨진다. 살짝 희수에게 시선을 주니 마지 본인이랑 상관없는 대화를 한다는 듯이 숟가락을 놀리고 있다.


최가에 시집오고 지금까지 순이는 항상 가장 손아래사람이었다. 재학이 있긴 했으나 시집오자마자 유학을 가버렸고 시집오고 1년만에 돌아가신 시조모를 포함해 시모, 남편의 식사와 이부자리를 챙긴 지 올해로 꼬박 18년이 넘었다. 그렇다고 딱히 실망한 건 아니다. 애초에 없던 동서가 안 들어온다고 해도 순이가 신경 쓸 일은 전혀 아니었다.


“그럼 치우고 오늘은 이만 들어가 쉬어라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형이랑은 따로 시간을 잡고 보던가 하고’”


“네 어머니. 형한테는 내일 제가 따로 들리던가 할게요”


어머니와 재학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 시작하자 식사를 다 하고 기다리고 있던 순이는 자연스럽게 상을 들고 나와 부엌으로 나온다. 국과 반찬 등 정리를 하고 있자 희수가 부엌에 들어오지는 않고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웃으며 순이에게 말한다


“형님 앞으로 자주 뵐 텐데 잘 부탁드려요. 힘든 일 있으면 말씀드려도 되죠?


“…그래요”


힘든 일이라, 무엇이 힘들거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순이는 생각했다 이 도시 여성이 힘들어 하는 일에 본인이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재학과 며느리가 돌아가고 해가 누일 시간이 되자 곧이어 재무가 집으로 돌아왔다.


“왔어요?”


“막둥이는? 바로 갔어?


“네 식사만 하고 어머니가 시간이 늦었다고....”


“에이 몇 년 만에 형님 보는 건데 좀 보고가지 이 새끼가....”


“들어와라-!”


재무의 목소리를 들은 복순이 재무를 큰소리로 부르고 재무는 입맛을 다시며 순이에게 배고프다고 말하며 들어간다. 순이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오늘 2번째 저녁 상을 차린다.


***


3월의 영월은 분주하다. 씨감자를 싹 틔워 심고 땅을 다지고 심을 수 있는 작물들도 가져다 심는다. 18살에 최가에 시집와 어느덧 34살이된 순이도 이젠 제법 농사꾼처럼 뵌다. 남에 집 허드렛일을 하며 끼니를 해결하며 살때에는 주방일이나 거들어봤지 제 밭에서 농사를 지을 일이 없던 순이에게 처음 시작한 농사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호랑이 같은 시모에게 매일매일 불호령이 떨어졌음은 당연하다.


“다 챙겼어? 어여 가자”


“…네”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았건만 급하게 아침을 크게 한술 뜬 재무는 이미 밭에 나가 있고 아침 식기를 정리하고 옌장이며 호무며 농기구를 한아름 챙긴 순이도 앞에서 발을 재게 놀리는 복순을 부지런히 따라간다. 인적 없는 새벽을 틈타 길가에 나와있던 메뚜기며 여치가 화들짝 놀라며 풀숲으로 도망한다.


이시기에 문산리는 무척이나 바쁘다. 재학에게 얼핏 듣기로 서울은 학생운동이다 뭐다 세상자체가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 외 자세한 설명은 꺼리는 듯했지만. 하지만 3월의 문산리만큼 바쁠까.... 하고 순이는 복순의 바쁜 뒤꿈치를 보며 생각한다. 이런 산골까지는 신문이 잘 들어오지 않고 들어와도 본인은 잘 읽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재학과 희수가 영월에 짐을 푼지 일주일이 넘어간다. 불편을 끼쳐드리기 싫어 나가 산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지 희수와 재학은 영월로 돌아온 날 하루를 제외하곤 한번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 형인 재무와도 밭에서 일할 때 잠깐 와서 인사했다고 한다. 그것도 재학만. 술 한잔 할 시간도 내지 않았다며 재무는 불평했지만 그 와중에도 희수 욕은 하지 않는 걸 보니 서울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제수씨가 어지간히 불편한가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아직 어스름이 다 가시지 않은 언덕에 밭이 보인다. 이 문산리에서 가장 넓은 밭이자 복순을 비롯한 최씨 일가의 밭이다. 이미 수건을 목에 두르고 정신 없이 일하고 있는 재무.


이 땅을 시모인 복순은 남편과 결혼해 소작으로 시작하여 이 땅의 자작이 될 때까지 장장 수십년을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비록 복순의 남편 즉, 순이의 시부는 복순과 결혼한지 10년이 지난시점 재학이 막 뛰어다니며 놀 때 군사분계선 근처에 갔다 눈 먼 총에 맞아 죽었다지만.


복순은 지금도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복은 든든한 두 아들이며 최고의 출세는 남에 땅에서 일당농사가 아니라 내가 뿌린 데로 거둘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그러니 남편 없이 시모를 10년이나 모실 수 있었노라고. 복순과 재무는 태생이 성실한 농사꾼이었다. 그러니 계속 해서 곳간은 찰 수밖에. 곳간이 차오른다는 게 일생 일대의 출세라는 건 순이도 동감하는 바였다.


순이는 기억이 나는 시점부터 본인의 끼니를 직접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도망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노름꾼이었다. 사실 이렇다고 들었을 뿐 집에 오는 날이 거의 없어 한 칸짜리 방에서 순이는 항상 혼자였고 그래서 순이였다. 혼자서 있어도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잘 있는다고 순해서 순이. 그런 순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이웃가게들에서 잡일을 하고 얹혀살았다. 그저 누울 자리 한 켠과 끼니를 위해 이웃들의 가게에서 일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볼 수 있으면 그만이었던 순이의 삶에 곳간이 점점 차가고 사는 게 나아진다는 건 낯설 수밖에 없었다. 즐거움까진 아닌지 모르지만.


“저건 어디서 나온 개새끼여”


“….”


오전 작업을 끝내고 순이와 복순, 재무가 잠깐 그늘에 바람을 쐬며 앉았다. 재무가 밭의 끝자락에 앉아있는 강아지를 보며 말한다. 순이도 물끄러미 바라본다. 태어난 지 석달이나 되었을까? 못 보던 황구다.


“그나저나 재학이 이놈은 이럴 거면 서울에 그냥 있지 잘 오지도 않을 거면 영월까진 뭣허러 내려와대요?”


“냅둬라 애들 가르치고 새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좀 힘들겠냐? 새아가도 시골까지 와서 힘들 텐데”


“지들이 새벽부터 농사를 지어 뭐를 해? 기껏해야 분필 끄적이면서 애들 가르치는 거면서 이럴 거면 와서 농사일이라도 좀 돕든가 하지”


“걔들이 농사 지으러 온건도 아닌데 농사를 왜 지어? 각자 다 하는 일이 따로 있는거지.”


“아니, 그럴 거면 뭣허러 영월까지 왔냐 이말이요 내 말은. 굳이 서울도 다른데도 다 많은데. 이 시골 영월까지 왔으면 어머니를 자주 봬러 오는 것도 아니여, 농사를 돕는 것도 아니여 왜 왔냐고 내 말은”


이렇게까지 얘기하자 복순도 말을 삼킨다. 복순도 사실 첫날을 제외하고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한번도 발걸음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적어도 복순과 재무가 생각한 재학과 며느리가 영월에 와서 정착한다는 것은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번 농번기때는 꼭 와서 한손 거들라고 할 테니 그리 아세요. 제수씨도 그래. 왔으면 좀 돕고 그래 야지.”


“아서라 아서. 애들 바쁜데”


“…”


순이는 말없이 강아지를 보며 희수가 감자 심는 모습을 상상한다. 감자 심으러 오라고 하면 흰 양말을 신고오려나? 그 세련된 여성이 흙 밭에서 땀 흘리며 흙 묻히며 일하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오전일을 좀 더 마무리한 순이는 먼저 밭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점심을 차리기 위해서다. 순이의 뒤로 황구가 쫄래쫄래 부지런히 따라온다.


“너네 집에가”


‘….?”


짐짓 무섭게 경고해보지만 뚱한 표정만 지을 뿐 황구는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그래 따라다녀도 먹을 거 안 나온다 는걸 알면 알아서 자기집에 가겠지 하고 순이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


순이를 보내고 난 뒤 재무와 복순 말없이 오전일을 마무리한다.


“재학이한테 너무 그러지 말어. 가족이랑 떨어져서 객지에서 공부한다고 고생하고 맘 둘 곳 없었을 텐데 고향 와서 가족한테까지 채이면 안디야.”


“내가 와서 무조건 농사일 돕고 어머님, 형님 밥 수발하고 하라는 게 아니잔소. 최소한 다른 지역도 아니고 어머니 계신 곳에서 생각을 해서 정착을 했으면 최소한 본인 할 도리는 하라는 거지. 암튼 서울가서 공부한다고 머리에 글자 좀 넣더니 뭐가 중요한지 아주 자기들 맘대로야. 어머니랑 있을 시간 얼마나 된다고 어머니한테 와서 한가지라도 배울 생각해야지 제수씨도 재학이도”


“…”


이번에도 대화의 끝은 복순이 입을 다무는 것으로 끝났다. 다만 재무는 얘기하다 보니 열이 올랐는지 복순에게 들리지 않는 크기로 구시렁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 그만 궁시렁거리고 정리나 혀 집에 가서 점심 먹게 그리고... 아직 소식 없재?”


“…”


이번엔 재무가 입을 다물고 뒷정리에 열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