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학교는 분주하다. 방학동안 떨어져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대한 반가움, 새로운 교실에서 느끼는 어색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이 누구일지에 대한 궁금증. 이 모든 것들이 학생 뿐만 아니라 공기마저 들뜨게 하는 거 같다.
“모두들 인사하세요 이번 학기부터 같이 근무하게 된 최재학 선생이에요”
“안녕하세요 최재학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학교의 교감선생이 교무실에서 재학을 소개한다.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한 재학은 예의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재학을 바라보는 선배 선생들은 저마다 어린 선생이 성실하게 할까 하는 약간의 불신과 저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 와서 근무하기위해 자원했다는 대견함 등등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대체적으로는 호의가 담긴 눈빛들이다.
“저기 맹재석선생님 옆자리에 가서 앉으면 되고, 맹재석선생님 부사수다 생각하고 잘 도와줘요”
“네.”
각 지게 생긴 남자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이는 40대좀 넘었을까. 덩치가 애들을 가르치기보단 장사에 더 어울리는 덩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디 탱크부대 출신이라나. 그렇게 소개가 끝나고 종이 울리자 교감선생님은 교감실로 올라 갔고 선생님들은 각자 출석부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개성이 담긴 회초리를 하나씩 들고 흩어진다. 재학은 부임 첫 학기엔 학급은 맡지 않고 국어를 가르치고 여름쯤 6학년 선생님 중 산달이 가까워져 출산을 하러 가는 선생님 대신 임시 담임을 맡기로 얘기가 됐다.
“1교시 다녀올 테니 개인 짐 정리하고 잠깐 쉬고 있어요.”
“네 선생님”
맹재석까지 그리 얘기하고 떠나자 재학은 홀로 책상에 앉아 교무실을 둘러본다. 교편을 잡은 지 얼마 안됐지만 초등학교의 풍경은 서울이나 영월이나 큰 차이는 없는 거 같다.
“후...”
새로운 공간이 주는 어색함과 번잡스러움이 지나가자 약간 진이 빠짐을 느낀다.
“영월이라….”
재학은 본인이 졸업한 학교에서 본인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서울에서 영월로 돌아올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으니.
정신없었던 첫날이 어찌어찌 지나가고 재학은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 앞에 마련된 선생님용 관사다. 일제가 지어놓은, 문산리에선 가장 좋은 축에 속하는 주택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맞춰 희수가 맞이하러 나온다. 희수는 집에서도 가벼운 화장을 하고 남편을 맞는다.
“왔어요? 첫날인데 고생했겠네요”
“응 아니야 괜찮아. 별 일 없었지?
“별 일 은요 뭐. 한참 비어 있던 빈집 누가 들어와 사나 동네 할머니, 아줌마들 와서 구경하고 가는 거 빼고는”
“오지랖들은…”
“근데 어머님댁은 진짜 이렇게 안 가봐도 돼요? 가서 밥하고 빨래하고 까진 아니어도 인사는 좀 자주 드려야하는거 아니에요? 영월까지 와서?”
“……일단 신경쓰지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요 그럼”
재학은 어딘가 불편한 자리에 앉은 듯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고 희수는 산뜻하게 몸을 돌려 부엌으로 간다. 아궁이에 불을 떼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결혼전까지는 아궁이에 불은 커녕 시골 생활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희수지만 요 일주일세에 제법 익숙해진 손놀림에 흥얼흥얼 콧노래도 나온다. 화장을 한 도시적인 여성과 시골 부엌의 아궁이는 막걸리 사발에 따라진 위스키처럼 어울리지 않았지만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는듯 콧노래를 흥얼거릴 뿐이다.
***
일과가 마무리된 저녁 복순은 이미 들어가 몸을 누인지 오래다.
건너편방에 시모는 자고 있고 순이는 시간을 내 조용히 빨래를 개고 있다. 재무도 오랜만에 동네 잔치나 인근 청년들과 특별한 일 없이 집에 들어와 있다.
“아직 별 소식 없지?”
“…”
재무와 순이 둘 다 건강에 문제가 있지 않은데 도무지 회임 소식이 없다. 누구 하나 특별히 소홀한 구석이 없는데도 그렇다. 처음 1,2년은 아직 어리니. 이후 3,4년은 그래 아직 삼신할매가 건강한 아이 골라주느라 오래걸리나 하고 가계나 불리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농사나 지으며 지나온게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이제는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자녀가 없는 건 이상한 나이요 결혼 년차다. 나오느니 한숨이기에 너무 복잡한 생각까지는 젖힌 채 오늘도 둘은 적당히 엉킨 채 잠이 든다.
***
재무는 부지런하다. 본인이 10살 무렵까지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도 그랬다. 항상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서 밭으로 향했으며 해가 서산 뒤로 숨고 어머니가 먼저 들어와 저녁상을 봐오고 배고프다고 재무의 입에서 투정이 나올 때가 되어서야 흙먼지를 털며 집으로 들어오곤 하셨다.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재무는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무뚝뚝하지만 가족을 든든히 받치는듯한 어깨와 항상 농기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굳은살 박힌 두터운 손은 재무에겐 먼 이야기속 신장과 같았다. 10살무렵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본인이 어느정도 힘쓰는 나이가 되었을 때 본인이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자연스레 깨달았고 그 뒤로 단 하루도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 자신할 수 있었다.
“후….”
허리를 들며 한쪽에서 일하고 있는 순이와 어머니, 그리고 밭을 바라보며 재무는 슬쩍 고양감을 느꼈다. 이제서야 본인 기억 속 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있는 거 같았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써 가족을 부양함과 동시에 이 밭을 잘 메워가고 있음에.
순이를 처음 봤을 때 한눈에 반했다 라기보다 본인이 책임질 수 있겠다. 싶었던 마음이 먼저였던 것도 사실이다. 평소 몇 번이나 지나쳤음에도 특별한 의식 없이 살아오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은 순이의 사정에 없던 관심이 생겼으니.
재무는 뿌듯하다. 본인이 순이의 일생을 잘 책임져주고 있는 것 같기에. 그런 의미에서 동생과 제수씨는 어렵다. 본인이 책임질 수 없는 이들이기에, 본인에게 어떠한 빚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재학이 오늘 저녁에 온대지?
잠깐 숨 돌리며 앉아 복순이 묻는다
“예 어머니 퇴근하고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오기로 했어요 고기라도 사다가 구워먹을까봐요 괜찮으셔요?”
“그래라 순이는 먼저 고기사서 집에 먼저 들어가면 되겠네”
“네”
순이는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좀 남은 시점 집에 가는 길에 마을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산다. 아직 시대가 하수상해 사람들 살림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복순네는 본인들 먹고 싶을 때 고기 한점 못 구워 먹을 정도는 아니다.
집에 가는 언덕길, 순이가 앉아 꽃 구경하는 단골 자리에 개나리가 피어 있다. 제일 좋아하는 코스모스는 아직 필 때가 아니지만 순이는 앉아 한참이나 꽃을 들여다본다. 아직 해가지려면 시간도 남고 재학네도 퇴근 후 집으로 올 테니 시간 여유가 조금은 있으리라.
한참 꽃구경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오자 어느새 마당 한자리를 피고 묶여 있던 황구가 반가움만큼 줄을 팽팽히 당기며 순이에게 오려 한다. 시골 사람 치고 개 먹이는데 큰 관심이 없던 재무와 복순과 달리 순이가 밥을 한 두 번 가져다 주고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니 어느새 그럴듯한 자리가 생겼다. 순이가 신경 쓰니 내키지는 않지만 나무로 지붕 있는 집도 재무가 지어줬다.
“헥헥”
“…이따 고기 줄게”
순이는 쪼그려 앉아 개를 쓰다듬는다. 쓰다듬으며 순이는 이름을 뭘로 하면 좋을지 생각한다. 집에 온지 벌써 열흘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스륵
꽃구경에, 개에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생각에 내심 놀라 일어나며 부엌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오랜만에 재학 내외가 와 같이 하는 식사자리에 할 일이 많다.
***
“며늘아기는?”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죄송해요 어머니”
“…됐다. 일은 어떻게 적응은 잘 하고 있는 거야?”
“예 뭐 특별한일 없어요 잘 하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오랜만에 막내 내외가 집으로 와 같이 식사를 할 거라는 생각에 분주했던 집안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학이 집으로 홀로 걸음한 것을 확인하자 재무는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고 복순은 티 내지 않으려 하지만 내심 언짢은 듯하다. 본인 불편한 것도 불편한거지만 어머니가 마음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재무가 괜히 한마디 말을 던진다.
“이놈아 처음 몇일이야 적응하고 정신없었다 치지만 어느정도 정리됐으면 집에 와서 형님 술상대도 좀 해주고 하지 뭐 바쁘다고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
“죄송해요 형님 이래저래 신경쓰느라”
재학은 첫날 교무실에서 인사할때처럼 친절하고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재무에게 얘기한다.
“되었다. 새삼스럽게. 며늘아기한테도 영월 왔다고 굳이 자주 와서 얼굴 비쳐야 한다고 얘기하지 말아라. 시골와서 지내는 것도 안 그래도 불편할 이한테”
“…어머니 앞으로는 자주 찾아뵐게요 이번에만 좀 이해해 주세요.”
“…고기 먹자”
적당히 선선한 늦봄의 저녁. 마당에 벌레도 없고 평상에 앉아 고기를 구워 먹기 딱 알맞다. 순이는 평상 옆 숯불화로에 조그만 나무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빤히 고기를 굽고 있다. 큰 그릇에 소주에 후추가루를 뿌려놓고 고기를 올리기 전에 한번씩 담궈 가며. 속으로 강아지에게 줄 고기가 조금 남았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영월에 처음 내려왔을 때 재무와 대략적인 얘기는 밭에서 한적 있지만 얘기를 길게 나누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재무의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서울 생활은 아주 정리하고 내려온거여? 언제까지 영월에 있으려고?”
“거기까진 잘 모르겠어요… 일단은 좀 좋은 공기 마시면서 쉬면서 애들도 보고하면서 지내려구요 당분간은”
“서울에서 뭔 일 있었어? 그래 봤자 양복입고 애들 가르치면서 있었는데 뭘 쉰다 소리가 나와 젊은 놈 입에서?”
“하하하하. 아니에요 별일 없었어요. 그냥요”
술이 좀 들어가자 재무는 별 의미 없이 꺼낸 말일텐데도 불구하고 재학은 웃어른과 술 먹는 거처럼 영 불편해진다. 실제로 재무와 재학은 형제지만 그렇게까지 가깝지 않다. 재학이 기억이 날때부터는 형님은 집에서 농사일을 도맡아 한다고 바빴고 본인은 농사일은 복순이 시키지도 않았을 뿐더러 흥미도 없었고 얼른 공부해서 서울 가는 것을 줄곧 목표 삼았으니. 오히려 순이가 더 가깝게 느껴질 지경이다.
“나는 이만 들어가 쉬마 재학이는 먹고 들어가고”
“이불 깔아드릴게요”
“되었다 너도 좀 먹어라 그만 굽고”
식사 내 조용히 젓가락만 놀리던 복순이 식사를 먼저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따라 일어나려다가 도로 앉는 순이. 밥 먹고 둘러앉아 먹으려고 옆집서 딸기도 받아왔지만 바로 들어가버린다. 묘하게 서늘한 뒷모습에 별다른 말을 보태진 못하겠다. 너무 피곤해서인지 희수가 자리하지 않은 것이 못내 못마땅해서 인지는 알 길 없다.
“…. 안녕히 주무세요 어머니”
재무와 재학 둘 다 묘하게 입을 다문다
“그건 그렇고 제수씨랑 뭐 문제 있거나 한건 진짜 아니지?”
“정말 아니에요 신경 쓰실 일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어제 이불을 내놓고 잣는지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다고 하더니 열이 좀 올라서 괜히 밤 공기 마시면 안 좋을 까봐 제가 쉬라고 했어요 본인은 오겠다고 하는 거”
“그렇다면야 뭐...”
“형님은 그간 별일 없으셨죠? 듣자 하니 마을 청년회장 되셨다고 하던데”
“귀찮은 일 할 젊은 놈들이 없으니 나라도 해야지 뭐”
말을 그리하지만 재무의 표정에 슬며시 미소가 핀다. 재무는 문산리에서 제일 큰 농사를 한다는 것도, 문산리의 노인들 빼고 젊은 장정들이 형님형님 하며 따르는 것도 못내 만족스럽다. 손윗사람이 아주 어른들 빼고는 없다는 점도.
“넌 그럼 바로 애들 가르치는 거여?”
“일단은 애들 국어만 가르치다가 2학기 출산하시면서 서울로 가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대신 맡게 될 거 같아요”
그 뒤로 몇 마디 더 말은 붙이면서도 사실 재무는 크게 관심이 없다. 잘 알지도 못하고. 다만 어머니가 자리에 없고 본인이 어른이니 뭇 할법한 질문들을 하는 것이다. 사실 재학이 서울에서 학교를 나오고 직장생활까지 시작했으니 재학과 재무가 오랜만에 만난 것도 만난거니와 단둘이 앉아 술을 대작하는 것은 생전 처음이다. 옆에 순이가 앉아있긴 하지만 고개를 박고 조용히 고기를 씹는 순이를 끼고 대화할것도 아니고. 재무도 재학 못지않게 불편하다. 순이가 밥을 먹으며 고기를 좀 더 굽기 위해 일어난 순간 재학은 일어날 채비를 한다.
“아 더 안 구우셔도 돼요 형수님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아 그려? 그럼 가자 가는 김에 나도 소변이나 보고 같이 좀 내려가지 뭐”
“상은...”
“제가 치울 게요. 들어가세요 도련님”
재학은 순이를 보며 송구하다는 표정을 짓지만 순이는 아무렇지 않다. 조금 남은 고기를 티나지 않게 꺼내서 아무도 없을 때 구울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하다.
“그럼 또 찾아뵐게요 형수님”
“네”
“가자 가자”
대문을 나서 언덕을 내려와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형제는 말없이 내려왔다. 어느새 어둑 해진 길에 형제의 뒤로 귀뚜라미만 시끄럽게 울어댈 뿐이다. 새삼 생각하니 집 아래로 향하는 이 언덕길을 형과 단둘이 걸은 지 얼마나 되었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재학은 걷는다. 중턱에 있는 집을 지나쳐 그대로 뒷산으로 올라가면 제법 공터도 나오고 오를만한 산세가 나온다. 기억도 잘 안나는 어릴 적에 형님이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도맡아 하기전에는 형과 올라가서 놀았던 것도 같다.
“그럼 들어 갈게요 얼른 들어가세요”
“그려 그려”
재학은 재무에게 말하고 집 방향으로 걸어간다. 잠깐 걸었을까 살짝 뒤를 돌아보니 재무는 집 방향이 아닌 마을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볼일이 있겠지.... 하고 관심을 끊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
“…맛있어?”
촵촵촵촵
먹고 남은 고기와 야채, 거기에 고기를 좀 더 구워서 밥과 함께 비벼서 내려놓기가 무섭게 공격적으로 달려든다. 이 쪼끄만 몸으로도 이렇게 잘 먹는게 신기해 한참이나 쪼그려 앉아 바라보고 있다. 이 조그만 아이가 열심히 밥을 먹는 모습은 이상하게도 순이의 마음을 참 편하게 만들어준다. 흐르는 동강처럼, 그저 피어 있는 코스모스처럼
‘이름이 먹보는 이상하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먹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뒤 일어난다. 복순의 방을 슬쩍 바라본 순이는 아직 치워야할게 한가득인 평상으로 걸어간다. 여즉 안 들어오는 것을 보면 재무는 마을회관에 들렀다가 늦게 들어올성 싶다. 빈그릇을 한아름 챙겨 부엌으로 들어가는 순이의 뒤로 먹보의 밥그릇 핥은 소리와 다 같이 먹은 평상위에 빈그릇들만 한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