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04화

by Breeze

길가에 피어 있는 개나리를 보고 이쁘다 한 게 불과 어제 같은데 벌써 여름이 문 앞까지 다가와 대문을 시끄럽게 두드려 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5월 밖에 안됐는데도.


순이는 굽혔던 허리를 피며 잠깐 하늘을 바라보다 주위를 둘러본다.


“....”


복순, 재무, 희수 모두 살이 타지 않게 토시에 모자에 두건까지 둘러쓰고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하고 있다. 순간 희수와 눈이 마주친다.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을 익살스럽게 지으며 순이를 보다 이내 싱긋 웃는다. 순이는 마주 웃어줄까 순간 고민했지만 다시 허리를 숙이고 하던 작업을 마저 한다.


희수는 자주 오겠다고 말한 게 빈말은 아니었는지 비 오던 날 이후로 근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에 3,4일씩은 재학이 출근하는 데로 집으로 와 농사일이며 집안일을 돕고 있다. 그 와중에도 창고 정리는 도울 일이 없었지만. 그 덕에 처음엔 불편해하던 복순과 재무도 이제 제법 막내며느리 대하는 모습이 편해진 모습이다.


덕분에 옥수수 1차 파종을 끝내고 오는 6월까지 2차 파종만 남겨두고 있으며 감자밭에 영양제며 물주기, 고추 밭에 부직포를 걷고 말뚝을 박고 있는 지금까지 1인분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서울 처자는 처음엔 배우는 모습이 느린가 싶다 가도 어느새 보면 꽤나 모양이 나오게 일을 하는 편이다.


“잠깐 쉬었다 하자고~”


멀리서 들리는 시모의 목소리


평상에 모여든다. 어느새 재무가 챙겨온 막걸리 주전자에 열무김치를 가운데 두고 둘러 앉아 막걸리를 한잔씩 마신다. 바삐 지나가던 바람도 쉬었다 하자는 복순의 말을 들었는지 잠깐 평상에 들러 가족들의 땀을 식혀준다.


“제수씨는 학교 다음달부터 나가는 거여?”


“네 형부”


“합창단이면 그럼 가서 뭐 가르치는 거여? 노래 가르치는 거여?”


“네네 노래도 가르치고 피아노로 아이들 반주도 넣어주고 음악도 가르치고 여러가지요”


“…노래 잘해?”


재무와 희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순이가 희수를 보며 묻는다.


“아하하 아뇨 형님 저는 노래보단 피아노를 어릴 때부터 쳐오고 음악을 오래해서 합창단을 맡기로 한거예요. 노래는 그냥 이게 맞다 틀리다 수준으로만 봐줄 수 있어요.


“피아노… 본적 없어”


“피아노를 본적이 없으세요…?”


“…”


본인의 말이 희수가 오해한 걸 느꼈는지 순이가 속으로 잠시 말을 고른 뒤 말을 재차 꺼낸다.


“읍내에서 지나가다가 본적은 있는데... 제대로 만져보거나 치는 모습을 본적은 없어”


“아아... 하긴 문산리 안에서는 교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피아노를 치실 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응”


“그럼 형님 다음에 저희 집에 한번 오세요! 저번에 어머님 오셨을 때 형님도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저랑 다음에 같이 가면 피아노도 보고 노래도 같이 들어요 무슨 노래 좋아하세요 형님은?


“…이미자”


“아 이미자... 노래 좋죠 저희 집에 LP도 많고 형님 듣고 싶은 노래 제가 쳐드릴 게요 저 이래봬도 이걸로 외국도 다녀왔어요”


허리에 손을 올리고 턱을 들어 올리며 희수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순이가 설풋 웃는다.


“배우기 어려워...?”


“아뇨! 형님도 충분히 배우실 수 있어요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농사일 하면서는…. 조금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급하게 배울 필요 없으니까요! 제가 가르쳐 드릴 수 있으면 천천히 가르쳐 드릴 게요.”


“...고마워”


“별 말씀 을요”


희수가 산뜻하게 웃는다.


“어머니는 좋아하는 노래 없으세요?”


“노래 같은 거 좋아하긴 뭘. 가끔 라디오에 나오면 듣는 거지.”


“어머니도 다음에 집에 오시면 제가 피아노 쳐드릴 게요 저 잘쳐요”


“일 없다.”


“에이 그래도요. 어머니도 한번 들으시면 또 쳐달라고 하실 걸요?”


평상위에서 말을 꺼낸 뒤로 담배를 태우러 간 재무 외에 여자 셋이 모여 있는데 희수만 줄곧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간다. 순이는 희수 웃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처음 문산리에 왔을 때만 해도 이 곳 문산리와 어울리는 사람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지금에 와 보니 화장기 없는 얼굴로 환히 웃으며 재잘재잘대는 모양이 꽤나 이곳과 잘 어울린다고 말이다. 순이는 고개를 돌려 바람 부는 고추밭을 보며 이미자의 노래를 흥얼댄다.


***


“그럼 형님은 18살 때 시집오신거예요?”


“...응”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쳤다. 보통 희수는 농사가 끝나면 재학과 저녁을 먹기위해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었는데 오늘은 재학이 학교에서 귀가가 늦는 날이라 집에서 같이 식사까지 마친 참이다. 재무는 식사가 끝나자 곧장 마을회관에 볼일이 있다고 나가버렸고 복순은 방에, 순이와 희수가 상을 내와 치우는 중이다. 이제 제법 둘이 같이 있는 모습에 어색함이 가셨다.


“동서는 그럼.... 서울에서만 살았어?”


“네 서울에서 태어났고.... 대학 다니던 중에 잠깐 불란서에 유학을 가기도 했는데 그때 빼고는 줄곧 서울에 있었어요. 불란서에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그이를 만난 거구요”


“불란서….”
설거지를 하며 순이는 상상한다. 말로만 들어봤던 복잡한 서울역 앞에 서있는 자신을, 무식한 본인도 알고 있는 그 에펠탑 앞에 서있는 본인을. 직접 가본 것도 아니건만 상상한 것 만으로도 순이는 기분이 살짝 들뜸을 느꼈다.


“형님은 서울 안 가보셨다고 했죠?”


“영월을 벗어나본 적도 없어.”


“영월은.... 특히 문산리는... 진짜 깊숙하긴 한 거 같아요. 서울에 있을 때는 그냥 다 같은 강원도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긴 진짜.... 깊숙해도 이렇게 깊숙할 줄은.... 그러니 밖에서 그 난리가 나도…”


“응?”


“아 아니에요. 그럼 형님 다음에 저랑 서울에 한번 놀러가봐요! 아니면 강릉 시내라도. 그래도 사람이 놀 때는 좀 놀기도 하고 좋은 것도 좀 보러 다니고 해야죠!”


“…그래”


순이는 대답하면서도 정말 서울에 가볼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정말 나이 들기 전에 말한 강릉이라도 한번 가볼 일이 있으려나.


“아 그리고 형님. 이제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네!”


“순이야~!”


부엌 밖에서 본인을 부르는 복순의 목소리에 순이는 상념을 깨고 부엌을 나선다.


“다 갈아놓게 가져와라. 시간 있을 때 갈아야지


마당 평상에 복순이 숫돌과 대야를 늘어놓고 순이에게 말한다. 희수는 순이가 창고로 걸어가자 시모가 뭘 챙겨오라는 건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순이를 따라 총총 걸어간다. 이윽고 순이가 창고에서 쟁기는 물건들을 옆에서 나눠 들며 복순의 말을 그제서야 이해한다.


삭-삭-


복순과 순이가 나란히 앉아 숫돌에 날을 갈아대기 시작했다. 칼이나 가위 같은 좀더 공을 들여야 하는 것들은 복순이, 쟁기며 호미 같은 억세게 갈아도 되는 일은 순이가. 희수는 물끄러미 둘의 모습을 바라본다.


둘 다 말도 없이 달빛 아래서 숫돌을 내려다보며 똑 같은 속도로 갈아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날붙이가 숫돌을 지나가는 일정한 박자와 규칙적인 소리가 묘하게 희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그리고 일정한 속도로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둘의 그런 모습이 많이 닮았다고 희수는 생각했다. 고부간이 아니라 마치.... 모자간 같다고 희수는 속으로 생각한다.


***


“어때요 언니? 너무 이쁘죠!”


한없이 밝은 얼굴로 거울 너머 본인과 눈 마주치며 희수가 웃는다. 순이는 어색하기만 하다. 거울 너머에서 본인을 보며 웃는 희수가 아니라 거울 속 본인의 모습이. 들어 보기만 했던 서양식 화장대 앞에 앉아 요즘 서울에서 한창 유행한다는 화장품으로 얼굴을 치장하니 전혀 본인 같지 않다. 과하게 이것저것 하려하기에 그나마 희수를 자제시킨게 지금이다.


평소의 까무잡잡하고 거친 피부 결을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정돈해주고, 자연스럽게 길어진 눈꼬리와 눈 주변으로 약간이나마 들어간 색조. 어색하지만 에펠 탑 앞에 서있기에는 평소의 본인보다 지금의 모습이 훨씬 자연스러울 거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언니 진짜 너무 예뻐요 잘 어울리고.”


“…고마워”


“이 핀으로 머리를 고정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니다. 이 머리띠를 하는 게 낫겠다. 아 그러네! 언니 이제 옷 갈아입어요 옷. 제가 언니보다 키가 좀 크긴 하지만 그래도 맞는 게 있을 거예요. 이리로 오세요 이리로!”


희수는 평소보다 확실히 들떠 있었다. 순이는 처음 온 희수의 집에서 집 구경을 느긋이 할 틈도 없이 희수에게 화장대며, 옷장이며 붙들려 다니고 있었다. 본인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고르기 위해 옷장 앞에서 이것 저것 꺼내 보는 희수를 바라보며 순이는 몇일전의 저녁 상을 떠올렸다.


“이제 평일에는 당분간 오기 어려울 거 같아요 어머니”


“그래 언제부터 출근한다고?”


“열흘정도 후요 어머니”


6월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희수가 기간제 교사로 합창단을 맡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합창단에 들어올 아이들과 수업시간이 정해져 곧 출근해서 교사로 일을 해야 한다. 재학은 원래 6월 말까지 있기로 했던 선생님이 조산으로 인해 갑작스레 휴직에 들어가는 바람에 더 바빠졌다. 3월에 재학 내외가 영월로 돌아오고 난 뒤 재학은 의무적으로 가끔 집에 온 반면 희수가 생각지도 않게 뻔질나게 집을 드나들며 농사일이며 집안일이며 열심히 도왔기에 복순도 고마운 마음이 컸다.


“그려 니가 와서 해본지도 않은 농사일 돕는다고 욕봤다.”


“에이 뭘요 어머니 제가 이걸 계속 하는 것도 아니고 재밌는 경험이죠 저한테는”


“…그려”


희수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였겠 으나 드문드문 듣게 되는 저 재학내외와 본인이 같은 식구가 아니라는 듯 언젠가 떨어져 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를 듣게 될 때마다 묘하게 속이 쓰린 복순이다. 정작 복순이 항상 걱정하는 재학은 얼굴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럼요 어머니. 이제 좀 바쁜 건 지니간 거예요?”


“농사일에 그런 게 어디 있니 계속 하는 거지 하다 보면 일이 생기고 일이 생기니”


“그래두요! 당장 다시 파종할 거 준비하는 거 같은 거 빼면 괜찮은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다만...”


“그럼 어머니 이번 돌아오는 일요일 하루만 저희 다같이 쉬면 안돼요?! 저 와서 고생했잖아요! 저 출근하기전에 하루만요! 같이 평상에서 맛있는 거 먹고 술도 한잔하고 하면 좋잖아요!”


순이도 티는 안내지만 귀를 쫑긋했다. 본인은 긴 시간동안 한번도 꺼내 본적 없는 얘기다. 하지만 순이의 생각보다 복순의 고민은 짧았고 대답도 시원했다.


“그럼 그러자 일요일 하루 쉰다고 한해 농사 망치는 것도 아니고.”


“언니! 그럼 저희 일요일에 읍내에 나가요! 예쁜 옷 입고! 화장하고! 가서 커피도 마시고! 돌아와서는 다 같이 고기파티!”


“….응?”


숨도 쉬지 않고 나온 희수의 말에 순이는 생각 못한 말이었는지 순간 놀라며 대답을 못하다 복순의 눈치를 살핀다. 순이는 그럼 일요일엔 창고정리를 하겠구나 싶었다. 복순도 희수의 이 말은 생각 외였는지 눈만 껌뻑 인다. 하지만 이내


“그려 다녀오거라 순이도 가끔은 바람도 쐬고 하면 좋지. 맨날 일만 하느라 어디 나다녀 본적도 없지 않냐.”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허락을 하는 복순.


“…네”


순이는 시모의 표정을 살피다 이내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복순이 얘기했는데 거기에 무어라 더 말을 얹겠는가.


“...근데... 난 이쁜 옷도 없고 화장도 못하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제가 있는데! 일요일에 저희 집에 오시면 제가 특 A 코스로 준비해놓을 테니 저만 믿으세요 언니!”


“…...응”


일요일에 무엇을 할지 재잘재잘 대는 희수와 가만히 듣고 있는 순이를 복순만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시간은 몇일 더 흘러 순이는 희수의 방에서 처음 보는 희수의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거울속에 본인을 마주하고 있다. 정확히는 재학과 희수의 침실이고 깔끔히 정리 돼있는 서양식 침대의 바로 옆에서다.


“언니 어떠세요 마음에 드세요?


“...응 예쁘네”


사실 순이는 봐도 잘 모르고 이런 옷을 입어 본적조차 없다. 원피스라니.


“아니에요… 뭔가 더 잘 어울리는 게 있으실 거 같은데 잠시만요. 잠시만...”


희수는 한참이나 옷장을 뒤져본다. 순이는 다른 것보다 오로지 외출을 위한 옷이 이렇 게나 많다는 거에 가장 크게 놀라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희수는 밝은 하늘색 블라우스와 무릎까지 오는 흰색 스커트를 꺼내 든다.


“언니 이거 한번 입어보세요”


이내 순이가 옷을 입고 나오자 희수는 이전에 들었던 거보다 훨씬 큰 호들갑을 떤다.


“어머어머! 이걸로 입으면 될 거 같아요 언니 이게 제가 오기전에 강남에서 제일 유행한다는 옷이었거든요. 한번도 못 입어서 아쉬울 뻔했는데 언니가 입으실 운명이었나 봐요.”


“…고마워”


희수가 준 흰 양말에 머리띠를 매고 구두를 신고 보니 거울 속 본인이 정말 서울 여자라도 된 거 같다. 서울여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34살 본인 평생에 가장 봐줄 만은 한 거 같다. 희수는 밝은 얼굴색에 어울리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샌들을 신었다. 희수는 참 잘 어울렸다. 이제야 맞는 옷을 입은 거 같았고 본인과 달리 하얀 피부가 빛나는 것 같았다.


“그럼 갈까요 언니?”


“…”


희수를 따라 집을 나서자 희수의 집 앞으로 택시가 와있었다. 순이는 아직 한번도 택시를 타본 적이 없다. 장터에 가려 읍내를 갈때에도 2시간에 한번 있는 버스에 짐을 한아름 들고 타고 갔지 무슨 택시란 말인가.


“이렇게 이쁘게 입었는데 땀 흘리면 그렇잖아요? 그리고 오늘 하루는 짧아요! 우리 오늘 바쁘다구요! 그러니 어머니한테는 비밀이에요!”


“…응 알았어”


평소 아주 짠돌이 까지는 아니지만 필요하지 않은 곳에 돈을 쓰는 일이 일절 없는 복순이 읍내에 나간다고 그 비싸다는 호출택시를 부른 걸 보면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순이는 생각했으나 희수의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멈췄다. 오늘은 희수를 따라나선 참이니 순이는 하자는 데로 따라갈 생각이다 군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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