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15화

by Breeze

“…”


아침부터 순이는 부엌에 꿀단지를 숨겨놓은 냥 나올 생각을 안한다. 처음 보는 ‘전기 밥솥’이란 물건에 정신이 팔려있다. 어제 저녁 재무가 사온 이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기 위해 전기를 부엌까지 끌어오느라 밤 늦게까지 한바탕 난리를 폈다. 전기선을 연결하고 쌀을 씻어서 누르기만 하면 밥이 된다니 순이로서는 거짓말인 것만 같다.


“엄니~ 누님~ 저 왔어요~”


바깥에서 들려오는 광석의 목소리에 순이가 부엌 바깥으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어 인사를 대신한다.


“…”


“누님 아침 하셔요? 뭐 좀 도와드릴까요? 안 그래도 오랜만에 아침 좀 얻어먹으려고 왔어요”


“…이거 뭔지 알아?”


광석의 시선이 순이의 손가락을 따라간다.


“어! 전기밥솥이네? 이야 해가 서쪽에서 뜬 거 아니에요? 이집에 이런 게 들어오고?”


“써봤어?”


“에이 그럼요 누님 이거 요즘에 시내에서도 그렇고 많이들 써요. 밥 좀 불려서 물만 맞추면 돼요. 이제 우리 누님 밥 탈까 봐 쭈그려 앉아있지 않아도 되겠네.”


광석의 말에 신기하다는 듯 전기밥솥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순이다. 그런 누이를 귀엽다는 듯 광석은 빙글거리며 웃고 있다.


“근데 아침 일찍 웬일?”


순이가 뒤늦게 묻자


“오랜만에 평일에 쉬는 날이라 집에 와서 잣거든요. 근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할 것도 없고 오랜만에 아침밥 좀 얻어먹으려고 왔죠 하하 어머니랑 누님도 뵙고”


광석은 읍사무소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무소 근처 직원 숙소에서 지낸다. 이렇게 가끔 집에 올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보다.


“안에 어머님이랑 형님 계셔요?”


“밭에... 어머니는 계셔”


“그럼 얼른 인사드리고 올게요 누님”


“…”


광석이 순이에게 말하곤 부엌을 나섰다. 순이는 어제 재무가 사올 때 듣고 순이에게 해준 설명을 머리속으로 기억해냈다.


‘불린 쌀을 붓고 손을 얹어서 손등 밑으로… 물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가마솥으로만 십 수년째 밥을 지어왔는데 이 작고 동그란 플라스틱이 밥을 만들어낸다는게 영 못 미덥고 불안하다.


‘희수… 쓸 줄 알려나…’


재학과 희수 부부는 일전 나들이날 집에 오기로 했으나 그날 얼굴을 비추지 않았고 그 이후로 열흘이 넘는 시간동안 집에 오지 않았다. 시기상 이제 학교에 출퇴근을 한다고 했던 시점이니 바빠져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날 무슨 사정이 있겠 거니... 생각하는 순이고 재무와 복순도 부부가 예정된 외출을 취소하는 건 필시 웃는 낯으로 얘기할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기에 그날 이후로 그들에 대한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있다. 시간이 자연스레 그들을 데려와 줄 것이라 생각하며.


배운 데로 밥을 안친 순이는 잠시 부엌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6월도 중순이 넘어가고 있었고 날은 무더웠다. 구름 한점 없이 쾌청한 하늘이었으나 언제그랬냐는듯 곧 장마가 시작될 터였다. 이번 장마는 부디 별일 없이 지나가길 순이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잠깐 먹보와 놀아주던 순이는 광석과 복순의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것 같아 방문에 가까이 다가간다. 괜스레 발소리를 줄였다. 인사만 하고 나온다고 하더니 얘기가 긴해지나보다. 가까이 귀를 갖다대자 복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광석의 목소리만 들린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요 어머니...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는 법 없지 않습니까...”


“크흠…”


“확실해지면 제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래”


“어잇!”


대화를 마친 광석이 방문을 열고 나오다 마루에 걸터앉아 방문에 귀를 갖다 대고 있던 순이 얼굴에 부딪힐뻔한다. 순이가 빤히 광석을 보자 석이는 괜스레 시선을 피하고 복순도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걸레로 방을 훔칠 뿐이다.


“밥 다 됐어요 누님? 잘됐나?”


티 나게 말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광석이고 복순이었으나 순이는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쩅그랑!


“…”


“괜찮으세요 어머니?”


“…괜찮다.”


복순이 쥐고 있던 숟가락을 갑자기 놓쳐 음식물이 튀었다. 광석이 서둘러 행주와 걸레를 가져와 닦았고 순이는 염려스럽게 복순을 바라본다. 재무가 밭에서 돌아오는 게 늦어져 셋만 밥상에 둘러 앉은 참이었다.


“어디 안 좋으신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그러게 이제 농사 좀 줄이세요. 이제 돈 들어갈 데도 없고 모아놓은신것도 있는데 언제까지 고생스럽게”


“일 없다. 농사꾼이 농사 안 지으면 뭐 한다고. 숟가락 하나 놓친 거 가지고 호들갑 떨지 말어.”


이때다 싶었던 광석은 복순을 향해 그간의 걱정과 염려를 쏟아냈지만 복순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 뭐해 밥들이나 먹어”


이어지는 복순의 짜증에 광석과 순이도 숟가락을 다시 놀린다. 걱정을 미처 전부 집어 넣지 못한채로


“엄니 저 왔어요~”


그때 문 밖으로 재무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이와 광석이 일어났다.


“오셨어요 형님!”


“어잇! 석이 이눔시끼 아침부터 일 안가고 여기서 뭐해”


“쉬는 날이라 오랜만에 아침밥 얻어먹으러 왔어요 형님이랑 어머님도 봬고”


“요즘 뭐 만나는 색시는 있고?”


“아잇 형님은 얼굴 보자마자 아픈 데를 찌르고 그러세요”


광석이 재무를 맞아 마루에서 대화를 나누고 순이는 가만히 부엌으로 들어가 재무 몫으로 따로 빼놓았던 밥과 국을 데우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요즘 몸 안 좋은데 없지?”


“…네 괜찮아요”


재무와 광석이 아직 나무 마루에 앉아 재무의 옷에 뭍은 먼지를 털며 대화를 나누고 순이와 복순이 둘만 남자 복순이 대뜸 물어왔다.


“니 몸은 니가 잘 챙겨라 그래야 아들도 낳고 하지.”


“…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안겨드리지 못한 손주 얘기에 순이는 고개를 밥그릇에 처박는다.


“여보 이거 전기밥솥으로 한거여? 밥 맛 괜찮네”


“…”


“그래도 당신은 복 받았어. 문산리 바닥에서 지금 아궁이밥 졸업한 집 우리밖에 없어. 어머니 밥맛 괜찮으시죠?”


“어여 먹어라”


재무가 들어와서 밥을 한 술 뜨자마자 말을 쏟아낸다. 복순은 늘 그렇듯 어딘가 탐탁지 않은 표정이고 순이는 별 표정이 없다. 광석은 오랜만의 익숙한 공기에 슬며시 미소짓는다.


***


요 몇일 최씨 일가는 정신없이 바쁘다. 곧 다가올 장마를 문제없이 보내기 위해서다. 농사꾼들이 제일 무서운 건 제 게으름을 제외하면 산짐승도, 날짐승도 아니고 하늘님인 법이다. 아무리 한해 농사 열심히 지어 놔도 하늘이 쏟아부어버리면 어쩌겠나.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수천평이나 되는 논 밭에 배수로를 다시 파고 넓히고 구술땀을 흘린다고 바쁘다.


복순이 굽혔던 허리를 피고 밭을 둘러본다. 올해 농사는 대풍을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이놈에 장마만 무사히 지나갈 수 있으면 말이다. 불과 몇 년전 일년 치 농사를 전부 빗물에 쓸려 보낸 적이 있는 최씨일가인터라 대풍이 기대되는 올해 장마 준비를 특히나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야 인마! 괭이질 똑바로 안할거여! 이놈 이거 괭이질 안 해본 놈도 아니고 잔머리만 늘었네!”


“아이고 형님! 저는 이제 사무직이라니까요! 화이트카라! 이런 거 전 이제 잘 못해요 서류 만지는 사람인데 제가”


“근데 이놈이 이게”


“풋.”


복순의 시선이 한 망태기 사는 자식들을 둘러본다. 간만에 아침밥 먹으러 왔다가 밥값하고 가라고 밭에 끌려 나와 투덜대는 광석과 오랜만에 보는 동생이 반가운지 승질내면서 부려먹으면서도 계속 웃는 낯인 재무. 마지막으로 드물게 웃는 순이. 복순은 한참을 들여다보다 다시 허리를 숙인다. 장마전에 준비를 끝내 놓으려면 아주 바쁠 터였다.


“형님 근데 뭐 이렇게까지 배수를 파요? 요 근래 그렇게 장마에 비 많이 온 적 없잖아요?”


“인마 그런 게 어딨어. 언제 비 많이 올 때는 우리 한테 미리 말 하고 온대냐. 그리고... 라디오에서 이번 장마가 요란스러울 거라고들 말이 많아.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염려하는 재무를 옆에서 물끄러미 보던 광석은 재무에게 묻는다.


“학이 형님네는 별일 없으시죠? 학이 형도 그렇고”


“학이네? 학이가 왜. 뭐 별일 없겠지 요즘 학교 일이 바쁜가 통 집에는 안 오네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그럼. 바쁘겠지”


“하긴 그렇죠? 영월 오신지 좀 되신 거 같은데 어째 아직 한번도 못 봬서요. 형님은요? 형님은 별일 없으시죠?


“나? 나도 뭐 별일 있을 게 있나 이놈아 그러니까 집에 좀 자주와 이렇게 가끔씩 와서 안부 묻고 하는 것도 좋지만은 식구가 자주 밥도 먹고 일도 같이 하고 해야 식구지”


“전 이제 사무직이라니까요 형님! 학이 형님이랑 같은. 사무실에서 저도 팬대로 일해서 농사일은 이제 못 한다니까 그러시네! 악 괭이는 또 왜드셔요!”


“이 시끼가 근데?”


“어이쿠”


재무가 승질내며 괭이 드는 시늉을 하자 과장스럽게 일어나 도망가는 광석이다.


***,


광석이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복순네 가족들도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재학이 집으로 올 것이다. 복순의 남편이자 재무 형제 아버지의 제삿날이니. 그동안 서울에서 직장생활과 유학으로 재학은 한참을 참석한적이 없으나 오늘은 올 것이다.


복순의 뜻에 따라 제사 음식과 제사를 간소하게 지낸지 꽤 시간이 지났다. 재무는 장손으로써 본인 아버지의 제사와 한참을 모시며 살았던 할머니의 제사를 같은 날에 그것도 간단히 상 하나 펴놓고 절만 삐쭉 하는 간단한 제사가 못내 찝찝할 뿐이었으나 죽은 사람보다 산사람이 더 중요하다 말하며 그날은 산사람들 농사 일찍 접고 밥 맛있는 거 먹고 일찍 누워 쉬면 그걸로 충분하다 말하는 복순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아버지 없이 시모를 10년이나 모신 어머니의 말이다. 거스를 수 없을 수밖에.


“여보 닭은 잡았어?”


집에 도착해 마당에서 재무가 물었다.


“니가 잡아라. 순이는 와서 나 파스 좀 붙여주고.”


“…”


복순의 대꾸에 재무는 ‘아침에 미리 좀 해놓지 그걸…’이라고 들릴 듯 안 들릴 듯한 크기로 중얼댔으나 복순은 듣고도 모른 척이다. 순이도 가만히 있었고.


“닭만 잡으면 되지?”


복순이 파스를 붙히기 위해 방에 들어와 옷을 가슴깨까지 걷은 채 순이에게 등 돌려 앉았다. 점점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위로 그전에 붙었던 파스가 이미 떨어져 옷과 함께 말려 올라간다.


“…네 다른 건 다 미리 해놨어요.”


“많이 하지 말라니까”


“그냥 나물 조금이랑… 얼마 안 했어요.”


“내년 부턴 그냥 닭만 잡자 반찬도 우리 먹을 거 할 때 조금만 덜어 놔 한쪽에. 따로 하지 말고. 우리 젓가락만 안타면 아무 상관없다. 죽은 사람 챙기다가 산 사람 상하면 그게 뭔 헛 짓이야.”


“…네”


“어머니 저 왔습니다.”


재학의 목소리였다. 원래 재학과 희수 부부가 집으로 오기로 한 날로부턴 열흘이 지났고 재학이 집에 온지는 3주는 족히 지난 시점이었다.


“말씀 나누세요.”


순이가 복순의 옷매무새를 정리해드리고 방을 나섰다. 옆에 서있던 재학과는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했음이다. 재학의 얼굴이 상한것도 같으나 표정이 썩 어두워보이거나 하지는 않았고


“들어와라”


재학이 복순과 얘기를 하러 들어가고 재무는 마당 수돗가에서 나무 도마를 가지고와 닭을 잡다가 재학이 들어간 방을 보고 우두커니 서있다. 재학이 들어가기 전에 재무와 인사는 마쳤다.


“저놈이... 쯧쯔...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


“제수씨도 그 이후엔 집에 온 적 없지?”


“…네”


본인 없을때라도 집에 왔나 해서 물어봤으나 역시나 그런 건 아니었나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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