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16화

by Breeze

“그래… 별 일 없지?”


“예… 별 일은요... 저번엔 죄송했어요 어머니 말도 없이....”


“별 일 없으면 되었다. 일로 바쁜 사람 오라가라 하고 싶은 맘 나도 없다. 부부 문제면 더욱이 나한테 말할 필요 없는 문제고”


“네… 죄송해요… 못 뵌 사이 살이 좀 빠지신거 같네요? 식사는 잘 하시죠?”


“살이 빠지긴… 너는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는거여? 왜 이렇게 얼굴이 피죽도 못 얻어먹는 거처럼 상한거여. 매느리가 밥 안 줘?”


“하하 안 주긴요… 요즘 그냥 일이 너무 많아서 밥을 먹어도 살이 빠지네요. 그런 거 아니에요”


“이따가 닭 삶는거 한마리 따로 챙겨서 가져가라. 가져가서 집에서 먹어. 좀 먹어야 기운도 내고 그러지.”


“네 알겠어요. 참 희수는 어머니 말씀데로 집에서 쉬라고 했어요.”


“…”


일전 재학이 집에 방문했을 때 제사에 희수까지 굳이 올 필요는 없다고 복순이 본인 입으로 못 박았다. 본인이 편하게 지나가자 말하고 있는 터에 얼굴도 모르는 시아비 제사 지내라 할 순 없었다. 오늘은 못내 아들 부부가 같이 있는 모습을 못 봐 안심이 안되는 복순이었지만.


“그래 아무튼. 올 사람 다 왔으니 어여 제사 지내자. 넌 대체 얼마만이여 아버지 제사 지내는 게”


“예”


재학이 형수를 찾으며 나갔고 복순도 일어나 남편의 영정을 벽면에 건다. 항상 화투나 파스 따위를 두는 소반에 영정을 올려놨지만 제사를 지낼 때면 벽에 걸어둔다. 항상 걸려있는 시모의 사진 옆에.


“어머니”


“어어 그래”


일어나 사진을 걸고 외투를 챙겨 입고 있던 복순의 뒤로 방문을 열고 밥상을 들여오는 순이가 보인다.


“닭은? 다 삶았디야?”


“거의 다 됐어요 밥 푸고 건져서 절하면 우리 먹을 때 쯤이면 다 익을거예요”


순이의 뒤로 재무가 들어오지는 않고 몸만 방안으로 들이민채 복순에게 묻는다.


“학이 놈… 뭔일 있대요?”


“신경쓸 것 없다. 어여 닭이나 건져와 빨리 지내고 밥 먹자”


“흠… 그려요 그럼.”


***


“녀석아 오랜만에 와서 뭔 술을 그렇게 마셔대는거여?”


제사가 끝나고 가족들이 둘러 앉은 참이다. 재무와 재학이 연거푸 술잔을 비우고 있다. 재무야 원래 술 없으면 못사는 종자라 그렇다 쳐도 재학까지 재무에 맞춰 술을 주는 데로 들이켜니 퍽 새롭다.


“아하하하 오랜만에 어머니도 뵙고 형님도 뵙고 형수님도 봬니 좋아서 그렇죠 좋아서! 제가 자주 찾아 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방학하고 여유 좀 생기면 자주 좀 찾아뵐게요”


“…그래라.”


“학이 놈도 다 컸는데요 어머니도 차암! 그래! 아버지 기일이라고 모여서 형님이랑 술도 한잔하고 그러니까 얼마나 좋으냐! 자주 와라! 자주 와서 이 형님이랑 술도 좀 마시고 하자!”


“하하하 네네. 그러겠습니다.”


“…석이가 도련님 안부 궁금해해요.”


“석이가요? 아 그러고보니… 영월 온지도 꽤 됐는데 아직 한번을 못 봣네요 읍사무소도 워낙 머니까 지나다니다가 볼일도 없고… 잘 지내요 석이는?”


재학과 석이는 몇 살 터울 안나는 형동생으로 가까이 지냈다. 많이 어릴 때 헤어져서 지금 만나면 어색하기야 하겠지만.


“…네”


“하하하 다음에 따로 보던가 할게요 감사해요 형수님”


어딘가 계속 과장되게 밝은 재학의 모습에 순이도 적응이 안되지만 그저 그런 날도 있으려니 하고 지나간다.


“동서는…”


“아 안사람이 요즘 정신없어요. 이제 막 학교 나가고 있고… 합창반 맡은 게 생각보다 더 본인한테 잘 맞나 봐요 아주 신나서 하고 있어요 지금.”


“아…”


“안 그래도 오늘 같이 오려고 했는데 이래 저래 집에 늦게 오기도하고… 해서 따로 왔어요 조만간 한번 인사드리러 올게요”


재학이 말하며 제 어머니를 힐끗 봤지만 복순은 그저 조용히 젓가락을 놀릴 뿐이다.


“형수님도 술 한잔 하시죠? 따라드릴게요”


“아… 네”


처음 받아보는 재학의 술잔에 순이도 잔을 마주 든다. 평소 술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 순이지만 오늘은 음복이라.


“내일은 출근하냐?”


“아 아니요 내일은 하루 휴가에요. 수업 없는 날이라서 휴가냈어요 오랜만에 제방에서 자고 아침 먹고 저도 일 좀 돕죠 뭐.”


복순의 물음에 재학이 답한다. 평상시 그리 집에 자주 들리지도 않던 막내아들이 제삿날 와선 술을 연거푸 먹질 않나, 평소와 다르게 억지로 밝은 거 같아 보이질 않나… 심지어 멀쩡한 제집 놔두고 자고 간다하니 복순의 찜찜함과 걱정은 이루 말할수 없었지만 똑똑한 아들이 때가 되면 말하겠지… 생각이 있어 삼키는거겠지… 기침처럼 나오려는 걱정을 억지로 삼키는 복순이다. 나이 먹으니 느는건 이런 인내라.


“…그래라 그럼.”


“네 어머니”


순이도 술을 받고 복순에게 마저 음복이 돌아가자 재학과 재무가 점차 말이 많아진다. 재무가 제 형제가 유년시절 다녔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동생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드러냈고 재학은 같이 다니는 동료가 소도 때려잡을 장사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복순도 처음 듣는 막내의 직장얘기라 다른 걱정은 잠시 접어둔 채 경청한다. 순이는 얘길 들으며 먹보에게 줄 고기를 세고 있고. 비로소 한가한 저녁이 되었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각자에게 다른 것을 건네준다. 하물며 개중에 몇 년간이고 다른 곳에서 다른 시간속에 살았다면 젓가락 쥐는 법조차 달라졌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재학이 영월에 온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아직 멀리 떨어져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은척하고 걱정을 안겨주지 않는 것이 당연해져 있었다. 그런 간극이 가족들로 하여금 말을 고르고 자연스러운 침묵이 찾아오지 못하게끔 강제했다. 견디기가 힘들었기에.


오늘에서야 그들은 잠깐이나마 전부 내려놓고 술과 죽은 아버지의 힘을 빌려 최선을 다해 평안하고 소란한 저녁을 만들었다. 예전처럼.


***


“아이고… 머리야…”


재학이 오랜만에 제방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음인가. 어머니가 먼저 잠자리에 들고 형수가 못 보던 강아지에게 고기를 챙겨주고 할 동안도 본인은 신난 형님과 술잔을 부딪혔다. 술잔을 상위에 올려두면 녹는 얼음이라도 되는 양 내려놓기가 무섭게 재차 들어올리는 술잔을 맞부딪히다 보니 평소에 잘하지도 못하는 술 어떻게 방으로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일어나셨어요?”


“아아 예 형수님”


문밖으로 순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 먹으라는 뜻이리라. 머리를 대충 쓸고 눈곱만 떼고 방을 나선다.


“형님은…?”


“잠깐 밭에… 곧 올거예요. 밥 낼 테니 세수해요”


“아… 네 감사합니다 형수님”


그렇게 술을 먹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밥 먹기도 전에 밭에 다녀온다니, 이럴 때 보면 제 형님이 농사꾼이긴 농사꾼이다 싶다.


“막내 일어났냐?”


“아 네 어머니 산책 다녀오세요?”


복순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재학에게 인사를 건넨다. 신난 먹보가 대문 밖에서부터 뛰어들어와 순이에 머리를 치댄다. 순이는 말없이 먹보를 쓰다듬는다.


“이기지도 못할 술을 뭘 그리 마셔대냐. 느그 형이랑 넌 애초에 술 먹는 종자가 다른데 다음부턴 그렇게 끝까지 상대해주지 말어.”


“아하하 네 알겠어요”


“그래… 순이야 국은 끓였냐?”


“네…”


“그래 얼른 밥 먹자 첫째도 곧 올텐데”


“네 어머니”


달그락 달그락


네 식구가 오랜만에 둘러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재학이 서울로 유학가기전에 먹고 잠깐 군 전역후에 들렀을 때, 빼고는 지금이 처음이니 온 식구가 아침 밥상에 둘러앉은 게 정말 얼마만인가 싶다.


“크어. 국 잘 끓였네 여보 속이 좀 풀리는 것이.”


재무가 두꺼운 손으로 국을 들어 그릇째 마시고는 순이에게 그릇을 내민다 순이는 자연스레 옆에 내려놓은 냄비에서 국을 던다. 재무에게 건네주곤 순이가 재학에게 시선을 둔다.


“아 전 괜찮아요 형수님”


“그래… 오늘 저녁에 집에 간다고?”


“네 어머니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일 좀 도와야죠 저도. 희수 학교가서 집에 가봐야 혼자 할 것도 없어요.”


“…”


“그래 좋지! 안 그래도 장마 앞두고 할 일이 천지다.”


“매늘이랑 진짜 무슨 일 있는건 아니지?”


“…아니에요 어머니 별일 없어요.”


어제부터, 아니 지난 몇일 동안 계속해서 목에 걸린 가시처럼 복순을 꺼끌거리게 했던 질문이 결국에 기침처럼 나왔고 재학의 말보다 앞선 잠깐의 침묵으로 복순은 대답을 들었다. 기어코 복순은 제손으로 가슴에 돌을 하나 얹었다.


“신경 쓰실 일 없어요 어머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하하”


“그래요 어머니 재학이도 나이가 있는데 어련히 잘할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 밥 먹자”


재무의 이어지는 속 편한 말에도 복순은 가슴에 얹힌 돌의 무게를 가늠할 뿐이다. 내려 놓는데 아주 오래,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돌의 무게를 말이다.


***


장마의 마지막 준비는 감자 수확이다. 봄에 심은 감자는 장마기간 내 두게 되면 전부 썩어버리기 때문에 전부 걷는다. 복순네가 1년중 가장 먼저 수확하는 농작물인 셈이다.


“야 이눔아! 똑바로 안해! 감자 다 짤려 나오잔어!”


복순이 고래고래 성을 친다.


“비 와서 땅이 진걸 나한테 그래요! 이걸 어뜩하라고!”


“에잉”


재무가 경운기를 끌고 감자를 파헤치면 복순과 순이, 재학이 쪼그려 앉아 땀을 뻘뻘 흘려가며 포대에 담고 있다. 돈 주고 부린 일꾼들도 오늘은 한가득이다. 수확시기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데 바로 얼마전 비가와 땅이 질어 감자가 수확기에 잘리고 다쳐 나온다. 올해 농사는 대풍이라 이정도로 손해 운운할 정도는 아니지만 천성 농사꾼인 복순은 자식 같은 감자가 다쳐 나오는 게 마뜩잖다..


재무에게 고래고래 성을 치던 복순은 다시 쪼그려 앉기 전 한 옆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재학을 힐끗 본다. 어렸을 적부터 농사 지을 시간에 집에서 공부 시킨 막내아들이라 해본 기억도 가물가물할텐데 제법 농사꾼 태가 나게 일을 하고 있다. 속에 있는 얘기 계속 꺼내느니 느는 건 본인 한숨이라... 이제는 습관이 되버린듯도한 어련히 똑똑한 막내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라는 생각과 말해줄 때까지 묻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다시금 꺼내 보는 복순이었다.


***


“나 다녀왔어”


“다녀왔어요? 어머니랑 형님은? 잘 지내시죠?”


재학이 들어와 현관에서 입고 갔던 옷을 내려놓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집에 와있던 희수가 재학을 맞으며 현관에 나왔다.


재학과 희수는 그날 이후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본인의 죄책감과 거기서 오는 열등감을 마주해버린 재학이 희수와의 대화를 피하려 하고 있고 희수는 그런 재학을 몰아붙이지 않고 남편이 어느정도는 홀로 갈무리하기를 기다려주고 있는 중이다. 많은 부분을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응 잘 지내고 계시지. 형수님이 당신 소식 궁금해하셨어”


“진짜요? 아 언니 잘 지내시나.”


희수의 얘기를 들은 재학이 바닥을 보다 시선을 들어올려 희수를 마주보고 얘기한다.


“…당신 궁금하면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한데로 다녀와 나 때문에 오히려 가고 싶어도 못가고 있었잖아. 당신 마음... 알아 나도.”


그날 이후 희수가 본인을 신경 쓰느라 본가에 걸음하지 않은 것을 안다. 영월에 왔음에도 본가에 들리기가 불편해 안 가려고 애쓰는 본인과 달리 희수가 더 본가를 챙기고 가족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재학은 본인이 희수에게 한 말과 달리 희수가 본인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본인 가족들에게 다가가고 가까워졌음을 안다. 그런 사람이니. 본인이 그런 희수를 사랑하였었으니. 열흘의 시간은 본인이 얼마나 못났는지를 다시 한번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건넨 건 어정쩡하나마 못나게 군것에 대한 사과였고.


“…”


희수가 잠시 말없이 재학을 바라보다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청담동에서 봐도, 금호동 달동네에서 봐도, 문산리에서 봐도 참 해사한 미소다.


“얼른 씻고 와요. 땀 많이 흘렸네.”


“…응”


재학은 갑자기 흐르려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꾹 참은 채 욕실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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