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순이는?”
“…아직이요. 한번 더 찾아볼게요 날이 차요 나와 계시지 말고 들어가세요.”
“…되었다. 들어가봐라 내일도 출근 해야할텐데.”
“이번주 일 안가요 여기서 잘거예요 걱정마셔요”
“…”
순이가 집을 나간지 이틀째 복순은 눈을 뜨자마자 평상에 대문이 보이도록 앉아 왼종일 대문만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 복순을 바라보던 광석도 한숨을 쉬며 대문을 바라본다.
재무와 여자는 한시라도 더 집에 있으면 십 원 한장 없을거라는, 당장 죽어버릴거라는 복순의 엄포에 애만 두고 달아났다 했다. 속이 빤하다. 착한 누이가 눈앞에 시모와 고사리손을 배 곯게 하지 않을 테니 나중에나 꾸물꾸물 나타나서 제 밭 주인행세 하겠지. 제 것도 아닌데 속이 뒤틀리는 광석이다.
‘…누님이 갈만한 곳 아는 데가 한군데도 없으니… 나도 참… 남 말할 처지가…’
내일은 더 멀리까지 다녀봐야 겠다고 다짐하는 광석이다.
***
이른 아침 복순이 여지 없이 밥도 먹지 않은 채로 평상에 앉았다. 광석이 이름도 모르는 아이 밥을 챙기며 복순을 걱정스레 바라본다.
“엄니 이거라도 좀 드셔요”
외투를 걸쳐 입으며 반만 깐 고구마를 복순의 손에 쥐여주는 광석이다. 그러고도 복순의 손은 움직일 줄 몰랐으나 꼭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다녀 올게요. 오늘은 꼭 누님 모시고 들어올게요.”
“…그래”
초점을 잃은 채로 대답하는 복순이다. 한숨 쉬며 나가는 광석이고.
초점 없는 시야로 한참이나 대문을 바라보던 복순. 서서히 눈이 커진다.
***
목이 마르다.
순이가 눈을 뜨며 한 생각이다. 순이는 몰랐지만 3일동안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았다. 가만히 있다 해도 몇 번이나 탈진해 쓰러지고 정신 차리길 반복했다.
‘죽는건가…’
이대로 죽는 건가 싶다. 애초에 얼마나 살고 싶다. 어떻게 살고 싶다에 대한 걸 생각해본 적 없는 순이었기에 죽음이라고 딱히 새삼스럽지 않다. 막연히 생각했던 거와는 다르지만 지금에 와서.
이렇게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인생이다. 애초에 반기는 이 없던 인생이었으니. 퍽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겠다
눈을 떠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동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순이의 시선에 희미한 보라색 점이 걸린다. 코스모스인가. 아직도 코스모스가 지지 않고 있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코스모스가 피어난 것은. 겨울을 앞둔 삭풍이 아닌 한해 농사로 지친 농사꾼의 땀을 달래주는 포근한 추풍이 코스모스 향을 한아름 가져와 순이에게 내밀었다. 순이의 몸이 조금식 데워지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 눈을 치켜 뜨려던 순이는 이내 몸에 힘을 풀고 보랏빛 바다에 몸을 실었다. 순이를 감싸 안은 추풍을 두른 보랏빛 바다는 태어나 덮었던 그 어떤 이불보다 포근했으며 향기로웠다. 어떤 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이순간이 영원하길 빌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게 죽음이라면 지금 당장 죽어도 아쉬울 것 없을 것 같았다. 순이는 서서히 눈을 감는다.
다만… 딱 한가지 아쉬웠다. 단 하나의 궁금한 것이 남았다. 이대로는… 안된다.
순이는 감기려던 눈에 힘을 줘 부릅떴다. 몸에 남은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는 데만도 한 세월이다. 뛰어올 때와 전혀 다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오른다리가 아픈 것이 뛸 때 다치기라도 했나 보다. 상관없다 집까지만 움직여주면.
말을 듣지 않는 몸으로 한참을, 한참을 걸었다.
“누…. 누님…”
가는 중에 광석을 만났다. 불과 얼마전까지 식구라 생각했던 이. 지금은 모르겠다 식구였는지. 멈추면 다시 가지 못할 거 같아 비척비척 계속 걸었다. 입을 열어 어떤 말도 할 기운이 없었다.
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의 눈에 걱정과 연민 그런 것들이 담겼다. 18년 식모살이 고생했다 눈빛으로나마 하는 치하일까 아무렴 상관없다.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보인다. 18년간 이것저것 이고지고 많이도 올랐던 언덕길. 수백 번 수천번도 올랐을 길이지만 오늘따라 낯설다. 잠깐 멈춰 서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진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대문 앞이다. 항상 보던 명패 ‘최재무’. 그래 이이의 집이었지.
대문 앞에서 마당을 마주하자 시모가 이미 일어나 문을 향해 오고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대문을 향해 걸어온다. 3일을 3년 같이 보낸 모양새다. 바닥엔 고구마가 구른다. 새벽부터 고르고 골라 쪄 놓은 고구마가.
“순이야…”
“…”
“순이야…”
“…”
복순이 순이의 한치 앞까지 다가와 손을 올려 순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한다. 손을 끝까지 올릴 기력이 없어 가슴팍에 머문다. 순이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복순은 그저 통곡한다. 순이는 얼굴을 내려 복순을 바라본다.
“순이야……”
“……”
한참을 보던 순이. 동강에서부터 가져온, 아니 어쩌면 18년을 가져온 물음이다.
“어머이…”
“…순이야…”
가슴에 단단히 쌓아두던 댐이 무너져 그 안에 있던 것들이 순이를 삼킬 기세로 퍼져나갔다.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나… 가족 아니에요? 나… 식구 아니어요? 그런거예요? 진짜에요?”
“순이야……”
“나 가족 아니었어요? 어머이……”
순이의 말을 듣던 복순은 기어코 무너졌다. 너무나 죄스러워서 도저히 땅에 두발 딛고 서있을 수 없었다. 그런 복순의 앞에 순이도 주저 앉았다. 두사람은 온 세상 한을 공평하게 나눠가진 것처럼 울었다. 천둥을 삼킨 것처럼.
“…니가… 니가…”
“…”
제 앞에서 하염없이 울음을 토해내는 순이의 얼굴을 복순이 손으로 쓰다듬었다. 둘 다 흙밭에 주저 앉으니 얼굴에 손이 닿았다. 복순은 기억도 나지 않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울음을 참았다. 지금 자신은 울면 안되었다. 입을 열때였다.
“…니가 내 가족이 아니면 누가 가족이겠느냐… 내 가족이 순이가 아니면 누가 내 가족이겠어… 내 딸이다. 니 어미고.”
“……”
“왜 이렇게 때가 탔어… 집 나가면 고생인데… 삼일이나 나가서 이래 더러워졌누”
복순이 엄지손가락에 침을 발라 순이의 목덜미에 생긴 땟국물을 지워준다. 애써 웃었다. 순이가 돌아왔다. 복순은 그걸로 되었다.
복순의 미소 띤 얼굴을 바라보던 순이는 또 한참이나 울었다. 복순의 손의 온기가, 복순의 눈빛이 집에 잘 돌아왔다 말하고 있었다.
순이는 3일만에 귀가했다.
***
5개월후
“누님 여기…”
광석이 내미는 조그만 항아리를 조심히 넘겨 받은 순이다. 안 그래도 조그맣던 시모가 많이도 작아졌다. 겨울을 오롯이 보낸 복순은 날이 점차 풀려감에 따라 급격히 몸상태가 나빠졌다. 마치 남은 미련이 전혀 없다는 듯이. 이정도면 오래 기다려줬다는 듯이 여러 병마가 복순을 찾았다.
“…”
순이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가만히 시모를 내려다보았다. 시모 살아생전에 시모의 몸을 닦아주며 했던 대화가 머리속에 맴돈다.
“어머이. 왜 나를 그렇게 예뻐하셧어요?”
“예뻐하기는… 내가 언제”
“항상”
“…시어미도 어미여. 며느리도 자식인데 안 예쁜 구석이 있을 라고.”
은수저도 한 벌 없이 시집 온 며느리를 그렇게도 아꼈다. 그렇게도.
복순은 본인이 죽거든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몇 차례나 당부했다. 묘도 필요 없으니 그저 집 앞 동강에 뿌리라 몇 번이고 얘기했다. 본인이 죽어 장례를 치르면 언제 재무가 찾아올지 모르니. 순이가 재무를 또 만나게 할 수는 없었다.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 뿐이었다.
광석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순이는 유골함을 평상에 내려두고 집을 둘러봤다. 18년, 이제는 19년째 순이가 살아온 집을.
쭈뼛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보니 이제 4살이 된 아이가 보였다. 얘쁘기도 하다. 눈이 올망졸망 크고 눈꼬리와 입꼬리를 마치 그려 놓은 듯 하다. 그 부리부리한 얼굴에서 나올 얼굴이 아닌데.
복순은 한사코 니가 저 아이를 돌볼 필요는 없다 신경 쓰지 말라 얘기했다. 내가 죽거든 재무가 알아서 잘 키울거라고. 아닐 걸 알면서
몇 개월을 같이 살면서 그저 먹이고 씻겼다. 그 어떤 것도 묻지도 말하지도 않은 채. 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보채지 않았고 기다릴 줄 알았다. 마치 자신의 처지를 안다는 듯이.
“누님 일단 읍사무소 근처 고아원에 얘기 해놨어요... 그이들이 언제 동네 올 줄은 모르지만 그래도 들리긴 할거고 자기네들 자식이라면 데려 가겠죠. 걱정 마세요”
“…고아원”
복순과 광석은 순이를 위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본인들도 알고 있는.
그들은 이 아이의 가족이 되어줄 생각이 없다. 그럴 마음이 터럭 만큼이라도 있었다면 이리 몇 개월이고 이 집에 내버려두고 가진 않았으리라.
순이의 시선이 아이에게 오래 머물렀다. 아이도 눈을 맞춰온다. 순이는 눈으로 말했다.
아이야. 너도 혼자구나. 나도 이제 다시 혼자란다. 하나뿐이었던 가족이 지금 막 먼 길을 떠나버려서. 어딘 지는 나도 몰라. 그래. 괜찮으면 이제 내가 너의 가족이 되어주마. 너도 나의 가족이 되어주거라. 우리 함께 살아보자꾸나. 우리가 가족이 되면 된다. 별거 아니다.
순이는 어린 시절의 본인을 향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앞으로의 다짐을 담아 눈 앞의 어린 아이에게, 어렸던 순이에게 말했다. 여전히 훌륭한 말재간은 아니다.
“배고프지? 밥 먹자.”
때아닌 코스모스 향이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