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홍콩이라고? 부산이 아니고?
“잘 갔다 와.”
가족들은 나를 보며 인사했다. 대학 생활에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휴학을 했다. 그리고 나는 홍콩으로 교환학생을 지원했다. 갑작스러운 듯, 계획적인 듯 나는 홍콩행 비행기에 앉았다.
처음으로 혼자 타보는 비행기였다. 조금은 어색하게 비행기 표를 가지고 체크인을 했다. 작은 공항 안에 사람들은 꽤 북적거렸다. 기대감에 차 있는 사람들 사이로 비행기를 탈 절차를 밟았다. 무거운 수화물을 보내고 또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섰다. 멍하니 밖의 비행기들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내가 탈 비행기는 무엇일까. 잠시 후 비행기에 탑승 안내방송이 들리고, 나는 많은 가족 사이에 혼자 줄을 서 내 자리로 찾아갔다. 내 자리는 오른쪽 날개가 보이는 창가 측 자리였다.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었다. 내가 기대했던 설렘인지 불안인지 알 수 없는 그 미묘한 감정이었다. 비행기 안내방송이 들렸다.
일 년이라는 기대감을 담은 커다란 이민 가방과 가방까지, 처음으로 혼자서 비행기에 올랐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기대감과 불안감 사이에서 춤을 췄다. 처음으로 나 혼자 한 선택, 그리고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선택이었다. 1년 치 옷들과 물건들을 눌러 담은 내 가방들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비행기는 서서히 한국을 떴다. 나와 20년 이상을 함께한 조그만 도시를 서서히 떴다. 높게만 보였던 빌딩들이 내 발밑에 작아졌고, 어느새 구름으로 뒤덮였다. 남극에 가면 이런 모습일까? 땅에서만 보던 구름을, 위에서 바라보니 새하얀 눈 같았다. 나는 긴장이 되듯, 편안한 듯 그 비행을 즐겼다. 나의 작은 일탈, 어릴 때부터 감춰두었던 갈망의 실현. 나는 비행기처럼 높이 날았다 땅으로 꺼지는 기분을 몇 번이나 받았다.
한국에서 홍콩의 거리는 생각보다 더 짧았다. 비행기에 앉아서 좀 넋 놓다 싶으니까 내리라는 신호가 왔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가슴에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모든 것은 너무 간단하고 쉽게 느껴졌다.
드디어 홍콩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상상했던 등장과는 아주 달랐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글로벌 인재처럼 멋지게 공항을 누비는 상상을 했던 것과는 달리, 축축한 습도와 뜨거운 열기에 숨도 잘 안 쉬어졌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책임감을 찾았다. 27kg의 이민 가방과 10kg 그리고 3kg의 가방이었다. 나는 36kg이란 책임감을 안고 공항을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다 내 배낭에 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비행기 안에서 잠시 끼고 넣어놓은 안경은 배낭 안에 없었다. 홍콩을 오자마자 안경부터 사라지다니. 나는 일단 침착하고 공항 안내대로 갔다.
안내대에는 나 말고도 백인 여성과 인도인 남성이 있었다. 나는 그 뒤에 줄을 섰다. 백인과 한창 이야기를 하던 안내대 직원은 백인 여성을 보낸 이후, 인도인 남성과 이야기했다. 이 남성은 특유의 악센트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짐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았다. 나는 안경이 빨리 찾고 싶었고, 밖에서는 나를 데리러 온 예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어글리 코리안이란 말을 들을 수 없어 참고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을 때 직원은 지친 얼굴이었다.
“제가 안경을 비행기에 두고 온 것 같아요.”
내 말에 직원은 전화기를 들더니 내 비행기 번호를 물었다. 나는 서둘러 티켓을 꺼내 비행기 번호를 말해주었다.
한참을 통화하던 직원은 나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자신의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비행기 안에는 없답니다.”
나는 잠시 당황한 얼굴로 직원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직원은 이제는 도와줄 의사가 없어 보였다. 할 수 없이 나는 액땜한 셈 치고 수화물을 챙기고 나갔다.
‘아직 안경 한 개가 더 있어.’
혹시나 해서 안경을 두 개 맞춰온 것이 이때 쓰일 줄이야. 나는 혼자 안도의 말을 내뱉으며 나왔다.
무겁고 습한 공기가 내 몸을 감싸 안았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바로 이곳은 한국이 아니구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습도로 인해 온몸이 무거워졌고, 손에는 땀이 젖었다. 물이 가득 담긴 공기였다. 찜질방에 있는 기분. 하지만 나갈 수 없는 찜질방이었다.
비행장으로 나가니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나를 알아보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카톡으로만 연락들 주고받다가 이렇게 만나니 이상했다. 홍콩에 오기 전부터 내 준비를 도와준 친구, 예배였다.
“Hey, So happy to finally meet you. (드디어 만나게 되어서 너무 좋아.)”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했다. 난 예배에게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고 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예배는 괜찮다며 내 손에서 가방 하나를 뺐어 들었다. 그리고는 버스정류장으로 안내했다.
“You told me it is gonna be cold. (너 나한테 춥다고 했잖아.)”
내가 예배에 말했다. 홍콩 날씨는 한국의 여름 끝자락 날씨 정도였다. 너무 습해서인지 더 덥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예배가 춥다는 정의를 잘못 알고 있거나, 내가 춥다는 정의를 잘못 이해해서 일 것이다. 한국의 매서운 추위와 싸우다가 온 나에게 홍콩의 추위는 가히 충격이라 할 수 있었다.
“언니, 추워요!”
예배는 서툰 한국말로 대답했다. 그랬다. 홍콩은 일 년 내내 거의 더운 나라여서, 이 정도만 온도가 내려가도 춥다고 이야기했다.
“공항에서 학교까지 어차피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지금 한번 갈아타는 버스는 30분을 기다려야 하고, 두 번 갈아타야 하는 버스는 15분을 기다려야 해. 무엇을 탈까?”
나는 당연히 덜 기다리는 버스가 좋을 줄 알았다. 그래서 15분짜리 버스를 골랐다. 예배가 재잘재잘 자신이 한국에서 여행했던 이야기를 해주는 사이, 나는 홍콩의 모습들을 눈으로 스캔했다. 한국과 정말 비슷한 모습이었다. 버스 내내 보이는 홍콩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외국 생활의 이국적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펼쳐진 바다는 부산을 연상하게 했다. 중국어가 없었다면, 비행기를 타고 한국 안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홍콩은 내 머릿속에 중국과 부산을 찢어 이어 붙인 콜라주를 연상했다. 외국의 이국적임을 하나도 느낄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한국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결국 내가 도착한 곳은 더 작은 찜질방 한국이었다.
그래. 솔직히 홍콩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이층 버스를 타고 두 번이나 갈아타는 것은 내가 3초 만에 내린 결정에 비해 너무 무거웠다. 나의 36kg의 책임감은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생각보다 학교까지는 더 오래 걸렸다. 학교는 공항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듣자 하니 홍콩에서 가장 번화가인 침사추이로부터도 꽤 멀었다. 뭔가 익숙하기도 색다르기도 한 풍경을 예배의 재잘거림과 함께 보았다. 홍콩은 어딜 가나 바다가 참 많았고, 바다에서 먼 도시에서 살던 나에게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2번의 환승과 2번의 후회, 그리고 몇백 번의 경외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예배는 재잘거리며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게 낯설었다. 버스는 홍콩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고 바다를 지나고 또 지나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버스는 산 가운데 길로 들어섰고, 한참을 올라가니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보통 내가 홍콩이라 했을 때 상상했던 번화한 도시와는 아주 다 달랐다. 푸릇푸릇 나무가 가득한 산 중턱에 학교가 있었다. 학교 맞은편엔 커다란 흰 불상이 있었고, 학교에서는 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무거운 짐을 끌고 또 20분 정도 걸어야 내 기숙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 기숙사는 학교 안에서 가장 안쪽에 있었다.
달달달달달달.
이민 가방은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이 먼 곳까지 오는 내내, 이 무거운 이민 가방을 끄느라 팔과 어깨가 너무 아팠다. 그리고 기숙사까지 끌고 가야 하는 지금, 가방의 무게는 내 이번 일 년의 무게를 예감하게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과 함께 진한 책임감이 올라왔다.
나는 그 36kg을 낑낑거리며, 내가 1년 동안 함께할 장소를 만났다.
예배를 따라 기숙사 관리실로 들어갔다. 예배는 익숙하게 광둥어로 관리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 관리자가 나를 보고 광둥어를 쓰자 난 어색하게 웃으며 영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관리자 아저씨는 홍콩 억양이 가득한 영어로 내 이름을 물어보셨다. 몇 개의 서류를 작성한 뒤 아저씨께선 카드를 내미셨다. 내 방문 키였다. 예배와 나는 관리자 아저씨가 안내해 준 방으로 올라갔다.
크리스마스이기도 하고 아직 학기가 시작하기 전이어서 그런지 학교도 기숙사도 한산했다. 내가 머무를 기숙사 방은 사층이었다.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로 가 내 방을 찾았다. 카드를 잠금장치에 대니 문이 열렸다. 호흡을 멈추고 내가 일 년 동안 함께 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밝은 햇살이 나를 반겼다. 문에 들어가자마자 왼쪽에는 부엌이 있었고, 직진하니 거실이 있었다. 거실 앞에는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테라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 테라스 앞으론 푸른 산이 펼쳐졌다. 내 상상 이상이었다. 기숙사는 12명이 아파트 한 방에 같이 사는 구조였다. 거실과 테라스, 부엌은 같이 쓰고 방은 1인용 2인용, 3인용으로 되어있었다. 비록 공용 물건들은 낡아 보였고 내가 처음 들어와 텅 비어있긴 했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