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절망에 관하여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직장을 다닌다는 것.
대기업을 다닌다는 것.
이름만 대도 알만한 회사를 다닌다는 것.
은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노예인데 내가 찬 족쇠가 황금이니, 은이니, 우리 주인이 더 부자니 하는... 그런 자랑 싸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1. 안정이라는 달콤한 독, 기꺼이 발목을 내어주다
출근길 지하철,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무표정으로 서 있을 때면 이 생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가방을 메고, 비슷한 곳을 향해 간다. (물론, 내가 다니는 판교에는 노예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자유분방한 스타일도 많지만..) 각자의 가슴속에는 저마다의 꿈과 열정이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월급날과 다음 휴가, 대출금과 아파트 평수 같은 현실적인 좌표만이 삶의 나침반이 된 지 오래다.
'황금 족쇄'는 생각보다 훨씬 안락하고 달콤하다. 매달 어김없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안정이라는 마약을 주사하고, 회사의 이름값은 '나'라는 개인의 불안정한 자존감을 손쉽게 채워주는 방패가 된다. 명절에 부모님 어깨를 으쓱하게 해드리고, 친구들 모임에서 괜히 한번 명함을 내밀고 싶은 마음. 그 모든 것이 족쇄의 일부다. 우리는 그 무게를 알면서도 기꺼이 발목을 내어주고, 그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성공의 증표라 믿으며 살아간다.
2. 가장 희극적인 자랑, '우리 주인'이라는 착각
'우리 주인이 더 부자'라는 논쟁은 이 비극의 가장 희극적인 부분이다. 성과급이 몇 프로니, 복지 포인트가 얼마니, 우리 회사가 업계 1위니 하는 이야기들. 그것은 사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소유한 시스템의 거대함을 자랑하는 것에 가깝다. 더 크고 화려한 우리에 갇힌 것을 우월함으로 착각하며, 옆 우리의 동료를 향해 으스대는 것이다. 정작 우리의 목줄을 쥔 보이지 않는 손은 다르지 않은데도 말이다.
3. 족쇄의 존재를 직시한다는 것
이따금 이 모든 시스템에서 뛰쳐나가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은 용기 있는 자인가, 아니면 현실 감각 없는 이상주의자인가.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은 자신의 족쇄가 황금인지 은인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족쇄의 재질이 아니라, 발목에 채워진 그것의 존재 자체를 직시한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내일도, 이 족쇄를 찬다.
물론 내일 아침, 나는 다시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 이 황금 족쇄를 정성껏 닦아 발목에 채울 것이다. 익숙한 무게에 안도하며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거대한 성의 부품이 되기 위해 출근할 것이다. 이것이 비겁함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질문만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토록 반짝이는 족쇄를 자랑하기 위해, 정작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
퇴근길, 전철 밖으로 보이는 대기업들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유난히 서글프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