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돈은 없다.
연구개발회사를 다니다 보면 국책과제를 하게 된다. 이는 기업이 자사의 기술력을 높이고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회다. 정부가 직접 연구비를 지원해 주니 얼핏 보면 회사 부담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막상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고민이 생긴다. 바로 회계처리다.
규모가 있는 기업이라면 회계팀이 따로 있어 복잡한 회계처리를 전담하겠지만, 작은 연구개발회사는 다르다. 별도의 회계팀이 없는 경우가 많고, 연구원이나 소수의 오퍼레이션 인원이 회계까지 겸한다. 연구실에서는 실험과 과제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자금 집행, 증빙 정리, 보고서 작성까지 챙겨야 한다.
이때 가장 낯설게 다가오는 부분이 정부보조금 처리 방식이다.
보조금이 왜 우리 돈이 아니지?
국책과제를 처음 맡았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정부에서 준 연구비를 수익이 아니라 부채로 잡는다는 사실이었다. 연구비가 전용 계좌로 들어오면, 장부에는 이렇게 적힌다.
차) 보통예금 100,000,000
대) 국고보조금(부채) 100,000,000
즉, 돈은 들어왔지만 아직은 우리 자산이 아니라는 의미다. 과제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하고, 남으면 다시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에 필요한 재료를 사거나 인건비를 집행하면, 일반적인 비용처럼
연구개발비로 처리한다. 예를 들어 1천만 원을 재료비로 쓰면:
차) 연구개발비 10,000,000
대) 보통예금 10,000,000
연구원 입장에서는 단순한 지출이지만, 장부상으로는 비용 계정이 늘어나고 자산이 줄어든다.
결산할 때는 사용한 만큼의 국고보조금을 줄이고, 같은 금액을
정부보조금수익으로 잡는다.
차) 국고보조금(부채) 10,000,000
대) 정부보조금수익 10,000,000
그 결과, 손익계산서에는 연구개발비 1천만 원과 정부보조금수익 1천만 원이 동시에 잡혀 순손익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할 사람들이 회계까지 직접 챙기다 보면 부담이 크다. 하지만 정확한 회계처리는 필수다. 국책과제는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투명성과 신뢰성을 시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비 집행과 회계처리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정산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꼼꼼히 관리하면 회사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기회가 된다.
작은 연구개발회사에서 국책과제를 맡는다는 건, 실험실의 시약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장부 속 숫자들을 챙기는 일까지 포함한다. 결국 기술 개발과 재무 관리가 한몸처럼 움직일 때 비로소 과제가 제대로 완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