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SAP 없어도 괜찮아: 공급업체포털 만들기(1)

내가 만들면 되지, 허허허.

by 구매가 체질

중소 구매 담당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것이다. 수십, 수백 개의 공급업체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고, 버튼 클릭 몇 번으로 발주부터 납품, 품질 서류 확인까지 끝나는 그런 시스템 말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SAP Ariba 같은 멋진 솔루션은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매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라이선스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나도 이런 프로그램을 써봤으니 이런 감이라도 있는거지, 중소기업에서는 언감생심 눈과 손으로 감내하고 버텨야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메일과 엑셀에 파묻혀 살아야 할까? 전화기를 붙들고 "팀장님, CoA(시험성적서)는 언제 보내주시나요?"라고 묻는 일을 반복해야 할까? 일은 편하고, 똑똑하게 하고 싶었다. 돈이 없다면, 머리를 쓰면 된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외주 제작 의뢰를 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걸 가장 잘아는 내가 '공급업체 포털'을 한번 만들어 보기로.


뭐가 필요한지 정의하고 기획하는 이 단계가 사실 가장 어렵고 많은 시간을 잡아 먹었다. 내가 원하는걸 내가 모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1: 우리가 탈출하고 싶은 현실


'공급업체 포털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아이디어를 처음 꺼냈을 때,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전문 개발자도, 거창한 예산도 없이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나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비효율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끝나지 않는 이메일의 굴레: 견적 요청, 발주서 전달, 납기 확인, 세금계산서 요청까지 모든 것이 이메일로 오간다. 담당자가 휴가라도 가면 업무는 그대로 멈추고, 어떤 메일이 최종본인지 몰라 혼란스러운 건 덤이다.


사라지는 품질 서류: 바이오 업계에서 CoA, CoC 같은 품질 서류는 제품의 목숨과도 같다. 하지만 공급업체들은 늘 잊어버리기 일쑤고, 우리는 서류를 받기 위해 몇 번이고 전화를 돌려야 한다. 그렇게 받은 서류는 담당자 PC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땐 귀신같이 사라지곤 한다.


깜깜이 납품 관리: "주문한 시약, 언제 들어와요?" 요청 부서의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 공급업체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다시 생산팀에 전달하는 원시적인 소통이 반복된다.

이 모든 과정은 엄청난 시간 낭비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인 실수(Human Error)의 원인이다. 이제는 이 '가내수공업' 방식의 구매 업무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2. 내가 그리는 청사진: '우리만의 소통 창구'


내가 기획하는 것은 SAP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이 아니다. 핵심은 단 하나,*'흩어진 정보와 소통을 한 곳으로 모으는 최소한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공급업체와 우리가 함께 사용하는 투명한 '소통 창구'이자 '데이터 저장소'를 만드는 것. 거창한 기능보다는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내가 꿈꾸는 포털의 핵심 기능은 다음과 같다.


하나, 모든 정보는 포털로 통하게 하자.

신규 공급업체 등록부터 인증서, 계약서 관리까지. 앞으로는 모든 것을 이메일이나 개인 폴더가 아닌 포털에 업로드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팀장님, 작년 계약서 좀 찾아주세요"라는 말이 사라지는 그림을 상상해 본다. 모든 정보는 자산이며, 자산은 개인의 컴퓨터가 아닌 회사의 시스템에 쌓여야 한다.


둘, 반복 업무는 똑똑하게 만들자.

발주서(PO)는 포털에서 버튼 하나로 전송하고, 공급업체는 그 자리에서 접수 여부를 체크한다. 납품 계획도 공급업체가 직접 입력하고, 우리는 실시간으로 현황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메일 첨부 파일을 열어보고, 다시 엑셀에 정리하는 과정이 통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로소 구매 담당자는 단순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가격 협상, 신규 업체 발굴과 같은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셋, 품질 서류는 납품의 필수 조건으로 만들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공급업체가 포털에 납품 등록을 할 때, CoA와 같은 품질 서류를 첨부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도록 시스템적으로 막는 기능을 구현하는 것. 더 이상 서류 때문에 전화하며 실랑이할 필요가 없길 기대한다. 이것이야말로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바이오 기업의 당연한 시스템 아닐까?


3. 완벽한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첫걸음'


물론 이 모든 것은 아직 기획 단계에 있는 '아이디어'다. 실제로 구현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 갖추고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Pain Point) 하나를 해결하는 작은 기능부터 시작해, 핵심 공급업체 몇 곳과 테스트하며 점차 살을 붙여나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비싼 돈을 들여야만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업무의 문제점을 직접 해결하려는 '시도' 그 자체다.


이 '공급업체 포털'이라는 작은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설렌다. 결과가 중요하랴, 그 과정에서 얻음이 더 중요한거지.


[지금까지 정리된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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