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밥벌이 여정
그때는 모두가 위기를 말했다.
돌이켜보면 기회이기도 했지만, 거대한 파도 한가운데에 있던 나는 숲을 보지 못했다. 그저 내 앞에 놓인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였다. 이 글은 우리나라 경제라는 산맥을 통과하며 내가 굴렸던 돌들이 어떻게 하나의 길이 되었는지 돌아보는 기록이다.
2006년, 나의 첫 사회생활은 생명보험회사에서 시작되었다. 안정적이었지만 숫자로 된 돌을 굴리는 일은 공허했다. 결국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했고,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졌을 때 나는 어학연수 중이었다. 짧은 연수 후 세상은 '생존'을 외쳤지만, 나는 '녹색성장'이라는 물결에 운명처럼 합류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돌은 태양광 패널과 강철 구조물, 컨테이너를 채운 부품들로 바뀌었다.
당시의 나는 '에너지 자립' 같은 거창한 비전 대신, 그저 납기를 맞추고 원가를 절감하는 돌만 굴렸다. 매일 아침 새로운 돌이 기다렸다. 그 묵묵한 반복이 거대한 '녹색성장'의 숲을 이루는 줄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창조경제' 시대, 나의 무대는 체외진단의료기기 산업으로 옮겨갔다. 나의 돌은 훨씬 작고 예민한, 온도 관리가 생명인 시약과 관련 소모품,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할 품질 서류들이었다. 미국에선 사기꾼으로 밝혀진 홈즈가 '여자 잡스'로 불리며 테라노스 신화를 썼고, 국내에선 'K-바이오 신화'가 떠들썩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에서, 나는 여전히 시지프스였다. 팬데믹 속 위태로운 공급망에서 부품을 구하기 위해 밤새 메일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굴린 그 의미 없어 보이던 돌들이 모여 회사는 코로나 시대의 수혜자로 기술특례상장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거대한 '바이오 강국'이라는 숲을 보지 못했다. 그저 내일 공정에 써야 할, 작지만 소중한 진단의 돌을 굴릴 뿐이었다.
코로나 광풍 속 회사가 상장했지만, 나는 새로운 돌을 찾아 나섰다. 'AI 열풍'이 불던 시절, 자율비행 드론 회사에 잠시 몸담았다. 나의 돌은 드론을 구성하는 수많은 작은 부품들이었다. 세상은 기술의 진보를 찬양했지만, 공급망의 맨얼굴을 본 나에겐 회의감이 밀려왔다. 엔비디아 GPU를 제외한 모든 부품의 중국 의존도는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결국 나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 온라인에서 다품종 소량의 부품을 찾아 헤매는, 또 다른 시지프스가 되어야 했다.
드론에서의 환멸 후 바이오의약품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엔 기대하지 않았다. 더 까다로운 단백질 원료를 다루면서도 거대한 꿈 대신, 오늘 필요한 원료가 제때 오는지에만 집중했다. 세 번의 환멸 끝에 오히려 평온을 찾았다. 거대한 숲을 그리지 않으니 눈앞의 돌이 보였다. 내 돌이 누군가의 치료제가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돌이켜보니 모든 돌들이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생보사의 숫자, 태양광 모듈, 진단 시약, 드론 부품, 지금의 바이오 원료까지. 각각은 형벌 같았지만, 그 중심을 '공급망'이라는 하나의 실이 관통하고 있었다. 어떤 혁신이든 결국 필요한 것을 제때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진실.
나는 더 이상 숲을 보려 하지 않는다. 내 앞의 돌에만 집중한다. 그것들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길이 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나는 거창한 의미 없이, 그저 돌을 굴린다.
영!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