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99식 구매는 이제 그만

글로벌 스탠다드 CPSM

by 구매가 체질

매월 말, 비용 리포트를 받아 들면 한숨부터 나올 때가 있습니다. 줄인다고 줄였는데 제자리걸음인 비용,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고가의 긴급 구매 내역들. 그 원인을 파고들다 보면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됩니다. 바로 체계적인 시스템 없이, 담당자의 '감'과 임기응변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업무 방식입니다.


저는 이것을 구매 부서의 '숨겨진 체지방'이라 부릅니다. 프로세스 없이 처리되는 일들이 만들어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과 비효율의 총합이죠. 이 공장은 조용히, 하지만 끊임없이 회사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성장의 발목을 잡습니다.


오랜 기간 여러 산업 현장에서 이 '숨겨진 체지방'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제가 내린 결론은 명확합니다. 해결의 열쇠는 특정 개인의 역량을 탓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세우는 데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핵심인 글로벌 스탠다드, CPSM(Certified Professional in Supply Management) 기반의 구매 프로세스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체득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과를 만드는 구매 프로세스 7단계


1단계: 요구사항 분석 (Requirement Analysis)

단계 정의: 구매의 첫 단추는 내부 고객(현업 부서)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문서화하는 과정입니다. 단순히 '무엇을' 살지 결정하는 것을 넘어, 필요한 성능, 품질, 수량, 납기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명확히 정의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정의된 내용이 이후 모든 구매 활동의 기준점이 됩니다.


유의사항: 여기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타사에서 이걸 사용하니까', 또는 '유명한 A업체 제품이니까' 라는 일차원적인 접근으로 우리 회사의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무작정 도입하는 것입니다.


2단계: 공급 시장 분석 (Supply Market Analysis)

단계 정의: 구매하려는 품목의 공급 시장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단계입니다. 시장의 경쟁 구도, 주요 공급자 현황, 가격 변동 추이, 기술 트렌드 등을 파악하여 최적의 소싱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입니다.


유의사항: 늘 거래하던 업체나 국내 시장에만 국한하여 분석하는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시야를 글로벌로 넓히고, 새로운 기술이나 잠재적 공급자를 끊임없이 탐색해야 숨겨진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3단계: 공급사 평가 및 선정 (Supplier Evaluation & Selection)

단계 정의: 잠재 공급업체를 발굴하고, 사전에 정의된 평가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심사하여 최적의 파트너를 선정하는 과정입니다.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 시스템, 기술력, 재무 건전성, 납기 이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최고 가치'를 제공하는 공급사를 찾아야 합니다.


유의사항: 단순히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최선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당장의 가격표 너머에 있는 품질 불량, 납기 지연 등의 리스크와 총소유비용(TCO)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4단계: 입찰 및 협상 (Bidding & Negotiation)

단계 정의: 선정된 잠재 공급사들을 대상으로 제안요청서(RFP)나 견적요청서(RFQ)를 보내 공식적으로 제안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조건으로 합의에 이르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단계입니다.


유의사항: 협상을 공급사의 이익을 깎아내는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쥐어짜는 방식의 협상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이나, 장기적으로는 파트너십을 해치고 더 큰 손실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5단계: 계약 체결 및 발주 (Contracting & Ordering)

단계 정의: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양측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근거로 공식적인 주문(발주, PO)을 진행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의 정확성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예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유의사항: 기존에 사용하던 표준 계약서 양식을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식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거래는 고유한 특성이 있으므로, 핵심적인 협상 내용을 계약서에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반영해야 법적 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6단계: 납기 및 품질 관리 (Delivery & Quality Management)

단계 정의: 계약 체결 이후, 공급사가 계약서에 명시된 납기와 품질 기준을 준수하는지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하는 과정입니다. 단순한 진척도 확인을 넘어, 잠재적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해결하는 선제적인 활동이 포함됩니다.


유의사항: 발주(PO)를 내보낸 순간 구매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발주했으니 알아서 오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납기 지연과 품질 문제로 이어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7. 단계: 대금 지급 및 성과 평가 (Payment & Performance Review)

단계 정의: 공급사가 계약대로 의무를 이행했는지 최종 확인(검수)한 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금을 지급하는 단계입니다. 동시에, 전체 구매 프로세스와 공급사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향후 개선을 위한 피드백을 도출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유의사항: 대금 지급을 단순 행정 업무로만 치부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축적된 공급사 성과 데이터는 다음 소싱 전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분석하고 활용하지 않은 채 사장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의 구매는 '전략'입니까, '업무'입니까?

오늘 저는 구매의 7가지 단계를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이 일을 왜 하는지 알고 접근하고 고민한다면 업무의 밀도가 달라질 것이고, 그것이 바로 구매를 '업무'에서 '전략'으로 바꾸는 핵심입니다.


주먹구구식 구매는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업무'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시스템에 기반한 전략적 구매는 회사의 미래를 만드는 '전략'이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구매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당장 거창한 시스템을 도입하기 어렵다면, 오늘 소개한 7단계 중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한 단계부터 개선을 시작해 보십시오. 그 작은 변화가 당신을, 그리고 당신의 회사를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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