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매출 냈는데 왜 통장은 텅 비었을까
여기, 창업 3년 차 소프트웨어 개발사 '체질코드'가 있습니다.
대표인 채구민 CEO는 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실력파 개발자 출신입니다. 그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회사는 매년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빠르게 성장했죠. 겉보기엔 탄탄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매출 그래프는 멋지게 우상향하는데, 정작 월급날만 되면 채 대표는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손익계산서에는 분명 ‘영업이익’이 찍혀 있는데, 왜 회사의 통장은 항상 비어있었을까요?
이는 회사의 근본적인 건강, 즉 재무가 약하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에는 '원가 체질’이 있었습니다.
제조업의 원가는 명확합니다. 원재료비, 인건비, 공장 운영비를 더하면 되죠.
하지만 ‘체질코드’와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사는 다릅니다. 우리는 제품이 아닌 ‘시간’과 ‘사람’의 전문성을 팝니다. 대표가 “모바일 앱 개발, 3개월, 1억 원”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부터, 프로젝트에 투입된 개발자의 모든 시간이 ‘원재료’처럼 투입되어 원가로 흘러갑니다.
회계적으로 프로젝트를 완료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쓴 모든 돈이 바로 매출원가입니다.
직접인건비 (70-80%): 프로젝트에 투입된 개발자들의 급여
외주용역비 (10-20%): 역량이 부족할 때 투입하는 프리랜서, 협력업체 비용
직접경비 (5-10%): AWS 같은 클라우드 사용료, 유료 라이선스, 출장비 등
채구민 대표가 재무팀과 함께 2024년 장부를 샅샅이 분석하자, 문제는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매출액: 3억 2,000만 원
매출원가: 2억 4,800만 원 ( 원가율 77.5%)
매출총이익: 7,200만 원
판매관리비: 8,500만 원
결과: 영업손실 -1,300만 원
문제는 매출원가율 77.5%였습니다. 건강한 개발사의 기준인 60~70%를 훌쩍 넘는 이 숫자는, 회사의 구매 및 원가 관리 체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적신호였습니다. 이익을 내기 힘든 약한 ‘원가 체질’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3. 회계의 핵심 원칙: 수익과 비용은 짝꿍이다
"매출을 기록하는 시점에, 그 매출을 만들기 위해 쓴 돈(원가)도 함께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수익·비용 대응의 원칙'입니다. 여기서 많은 개발자 출신 대표님들이 궁금해하는 지점이 생깁니다.
“프로젝트는 3개월짜리인데, 검수는 마지막 달에 끝나요. 그럼 앞선 두 달 동안 개발자들에게 지급한 월급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죠?”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재공품'이라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사실 소프트웨어 회사에는 눈에 보이는 ‘만들다 만 물건’이 없습니다. 하지만 회계에서는, 아직 매출로 바뀌지 않은 개발 과정(누적된 인건비, 경비 등) 그 자체를 일종의 ‘자산’으로 봅니다.
이 ‘미완성 프로젝트에 쌓인 원가’를 담아두는 가상의 바구니를 회계 용어로 '재공품(Work-in-Progress)’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6천만 원짜리 프로젝트를 3개월간 진행해 12월 말에 완료했다면,
개발 중 (10~11월): 발생한 원가를 바로 비용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재공품’이라는 자산 계정에 차곡차곡 쌓아둡니다.
검수 완료 (12월): 드디어 매출 6천만 원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동안 ‘재공품’ 바구니에 모아두었던 모든 원가를 ‘매출원가’라는 비용으로 한 번에 전환합니다.
이 원칙을 지켜야만, 특정 프로젝트가 정말로 돈을 벌었는지, 아니면 손해를 봤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매출원가율을 확인하세요. 매출원가를 매출액으로 나눈 값으로, 낮을수록 체질이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50-60%: 매우 건강 (우수)
60-70%: 양호
70-80%: 주의 필요 (과체중) ← 과거의 체질코드!
80% 이상: 위험 (고위험군)
둘째, M/M(Man/Month)당 실현단가를 계산하세요. 개발자 한 명이 한 달 일해서 얼마의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만약 M/M당 벌어들인 돈(단가)보다 쓴 돈(원가)이 더 많다면, 그 프로젝트는 회사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파악한 채구민 대표는 회사의 원가 체질 개선을 위한 3가지 액션플랜을 즉시 실행했습니다.
타임시트 작성 의무화: 어떤 개발자가 어떤 프로젝트에 시간을 얼마나 투입했는지 기록하는 것은 원가 관리의 가장 기본입니다. 데이터가 없으면 진단도, 개선도 불가능합니다.
데이터 기반 견적 공식 수립: 주먹구구식 견적을 버리고, 예상 원가 + 간접비 + 목표 이익을 고려한 표준 견적 공식을 만들어 최소한 손해 보는 계약을 피했습니다. 이는 건강한 구매 체질의 시작입니다.
월말 결산 루틴 도입: 매달 말, 프로젝트별 원가를 집계하고 매출원가율을 계산해 회사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1년 뒤, ‘체질코드'는 이름 그대로 탄탄한 원가 체질을 갖춘 회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25년 상반기 실적은 놀라웠습니다.
매출액: 1억 8,000만 원
매출원가: 1억 800만 원 (원가율 60%)
매출총이익: 7,200만 원
판매관리비: 4,500만 원
결과: 영업이익 2,700만 원 (흑자 전환!)
채구민 대표는 이제 자신감 있게 말합니다. “이제는 매출이 곧 이익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우리 회사의 진짜 건강 상태, 즉 재무 체질을 숫자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측정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개발자 출신 대표 여러분, 버그를 잡기 위해 로그를 뒤지듯 회사 경영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관리되지 않는 매출원가는 당신도 모르는 사이 회사의 이익을 갉아먹는 메모리 누수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 엑셀을 열고, 이번 달 프로젝트별 원가를 계산해보세요. 우리 회사의 원가 체질이 과연 건강한지, 오늘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