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이 '게임 머니'처럼 느껴질 때

나는 데이터를 보기 시작했다.

by 구매가 체질

1. 구매 업무의 본질과 데이터의 필요성


업무상 거액의 자금을 다루다 보면, 그 숫자의 무게에 무감각해지는 순간이 온다. 회사의 자본이 마치 '게임 머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매(Purchasing) 업무는 발주, 납품 관리, 월 마감 등의 단순 행정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구매 업무의 본질은 다르다. 특히, 체계적인 ERP나 시스템이 부재한 조직일수록, 구매 담당자의 역량이 회사의 핵심적인 의사결정과 비용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명확한 데이터 시스템이 없다면, 의사결정은 '경험'과 '감'에 의존하게 된다. "이 정도 비용이 예상됩니다", "관례적으로 이 업체를 사용했습니다"와 같은 불확실한 근거가 기준이 된다. 나는 이 '감'을 명확한 '사실'과 '근거'로 대체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것이 데이터 분석을 시작한 이유이다.


2. 데이터 모델 구축: 실무적 난관과 해결 과정 (The 'How')


Power BI라는 도구를 선택했으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실무 데이터는 즉시 분석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으며, 데이터 분석의 8할이 '데이터 정제(Data Cleansing)'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데이터 무결성 확보: 원본 데이터에는 존재함에도 특정 항목의 집계가 누락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백이었다. Trim 및 Clean 함수를 적용하여 원본 데이터를 정제한 후에야 정확한 집계가 가능했다. 또한, 파워 쿼리(Power Query) 편집기에서 '첫 행을 머리글로 사용' 시 자동 생성되는 오류 M 코드를 직접 진단하고 삭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관계형 모델 설계 (Star Schema): 핵심 문제는 Sheet1(납품 이력)과 Sheet2(발주 이력) 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어 데이터 집계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 연산자 오류는 '텍스트'와 '숫자' 형식의 데이터 충돌로 인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인(Join)의 키(Key)가 될 모든 열의 데이터 형식을 '텍스트'로 강제 통일하고, '발주번호 + 규격'을 '복합 키(Composite Key)'로 정의한 '발주_라인_Master' 브릿지 테이블(Bridge Table)을 생성하여 데이터 모델의 중심을 확립했다.


마스터 데이터 생성 및 관리: 데이터가 특정일(예: 11월 5일)까지만 집계되는 현상은 '날짜_Master' 테이블의 범위 설정 문제였다. CALENDAR 함수의 최대 날짜를 2030년으로 확장 고정하여 향후 데이터 입력을 대비한다. 나아가 'Thermo'나 'Danaher' 같은 그룹사별, 혹은 '실' 단위별 분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M 코드(고급 편집기)와 '데이터 입력' 기능을 활용해 '제조사_Master' 및 '실_Master'를 직접 생성하고 관계를 설정했다.


3. 분석 결과: '감'을 대체한 3가지 핵심 인사이트 (The 'What')


이 견고한 데이터 모델링 과정을 거쳐, 실무에 즉시 적용 가능한 3가지 핵심 인사이트를 도출했다. 이는 단순 합계(SUM)를 넘어, AVERAGEX, SUMX, SAMEPERIODLASTYEAR 등 정교한 DAX 측정값을 통해 구현되었다.


인사이트 1: 안정적 공급망 식별 (리드타임 변동성 분석) '평균 리드타임'이 짧은 공급사보다 중요한 것은 '리드타임의 변동성(표준편차)'이 낮은, 즉 안정적인 공급사이다. 4분면 분산형 차트(Scatter Plot)를 통해 리드타임의 평균과 변동성을 동시에 시각화함으로써, 재고 관리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핵심 공급사를 객관적으로 식별했다.


인사이트 2: 자원 집중 대상 선정 (파레토 분석) 모든 공급사에게 동일한 관리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파레토(ABC) 분석을 실행하여, 발주금액의 80%를 차지하는 'A등급' 핵심 공급사를 명확히 구분했다. 이는 C등급 공급사에 투입되는 과도한 행정 리소스를 줄이고, A등급 공급사와의 전략적 관계 관리에 집중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인사이트 3: 실제 가격 인상률 추적 (가중 평균 인상률) 단순 평균 인상률은 '구매 품목 믹스(Mix) 변경'으로 인한 착시를 유발할 수 있다. (예: 저가 품목 구매 증대, 고가 품목 구매 감소 시). 이 함정을 피하기 위해, '구매 금액(수량) 가중 평균 인상률(YoY)'이라는 정교한 측정값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어떤 제조사가 실제로 가격을 가장 많이 인상했는지"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4. 결론: 데이터 기반 전문가로의 진화


데이터라는 무기를 확보하는 과정은 기술적인 난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감'에 의존하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명확한 '근거' 기반의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구매 담당자는 매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성하고 처리한다. 이 데이터 속에서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 관리자를 넘어 조직의 비용 효율화와 전략적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다. '감'이 아닌 '근거'로 말하는 것, 그것이 데이터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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