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폭풍의 눈 속에서

휴전(休戰)이라는 이름의 1년, 그리고 AI

by 구매가 체질

2025년의 늦가을, 글로벌 비즈니스의 공기는 기묘하게 차분합니다. 마치 거대한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혹은 더 큰 파도가 오기 전의 그 짧은 고요함처럼 말이죠. 11월 1일, 백악관과 베이징에서 동시에 들려온 '무역 휴전' 소식은 우리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복합 위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 대전환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단순한 물건의 이동을 넘어, 국가의 전략과 인공지능의 지성이 교차하는 2025년 말의 풍경. 그 속에서 공급망 전문가들이 읽어내야 할 시대의 징후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1. 1년이라는 시간의 유예: 'Shock and Awe'를 넘어서


지난 11월 초, 미국과 중국은 펜타닐 규제와 관세 완화를 맞교환하며 1년짜리 '전략적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반도체와 조선업을 옥죄던 규제의 끈이 잠시 느슨해졌고, 숨 가쁘게 돌아가던 공급망 시계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평화일까요? Journal of Supply Chain Management에 실린 논문 Shock and Awe(충격과 공포)는 현재의 관세 정책이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니라, 공급망의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외부 충격임을 경고합니다. 2026년 11월 10일, 이 유예 기간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격랑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1년은 '휴식'이 아닌 '준비'의 시간입니다. 단순히 중국을 떠나는 'Exit' 전략이 아니라, 중국과 비중국을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전략,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계산기에 두드려 넣는 지정학적 실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2. 실리콘 동료의 등장: 생성형 AI에서 '자율형 AI'로


2024년이 AI에게 질문을 던지던 해였다면, 2025년은 AI가 스스로 답을 찾아 움직이는 해입니다. Gartner와 BCG가 주목한 2025년의 키워드는 단연 자율형 AI(Agentic AI)입니다.


이제 AI는 우리가 시키는 대로 이메일을 쓰는 비서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율형 AI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재고가 부족하면 공급업체와 협상을 시도하며, 물류 경로가 막히면 우회로를 찾아냅니다. 엔비디아(NVIDIA)가 그리는 물리적 AI(Physical AI)의 세계에서, AI는 로봇의 몸을 빌려 물류 센터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이 도입한 AI 시스템 'CAP'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인간은 전략을 고민하고, AI는 복잡한 데이터를 씹어 삼켜 최적의 해답을 내놓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맞이할 사무실의 풍경입니다. 이제 우리는 AI를 '도구'가 아닌, 유능한 실리콘 동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3. 끊어진 동맥과 흐르는 데이터: 물류의 이중주


물리적인 길은 여전히 험난합니다. 홍해의 뱃길은 막혀 희망봉을 돌아야 하고, 파나마 운하는 기후 위기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 지수(SCFI)가 1,450선을 오르내리는 동안, 기업들은 효율성이라는 옛 신화 대신 회복탄력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동맥이 막힌 곳을 뚫는 것은 결국 '데이터'입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본격 시행을 앞둔 지금, 탄소 배출 데이터는 화물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해졌습니다. 이제 물류는 화물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정보를 옮기는 행위로 정의됩니다.


4. 에필로그: 2026년을 준비하는 자세


ISM의 10월 보고서는 제조업의 위축을 말하고 있지만, 그 행간에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읽힙니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나는 나무만 보는 단순한 관리자인가, 아니면 흐름을 설계하고 숲을보는 아키텍트(Architect)인가.


리스크 관리와 기술 역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듯, 우리의 업(業)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거시경제의 파도를 읽는 눈, AI와 협업하는 유연함, 그리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균형을 잡는 담대함.


폭풍의 눈은 고요합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야말로, 가장 치열하게 미래를 그려야 할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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