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팀은 모르는 '구매팀 숫자의 비밀'

KPI 해킹

by 구매가 체질

구매와 SCM(공급망 관리)은 회사의 그 어떤 부서보다 '숫자'가 명확한 조직이다. 원가 절감률, 납기 준수율(OTD), 재고 회전율... 우리의 성과는 엑셀 시트 위에서 매일매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조 기반의 회사라면 이 숫자는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래서 인사팀은 구매팀을 평가하기 쉽다고 착각한다. "작년 대비 원가 5% 절감했나요? 달성했으면 S, 못했으면 B."


하지만 16년 차 SCM 실무자로서 고백하건대, 잘못 설계된 KPI는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는 매번 'S등급'을 받지만, 회사는 서서히 병들어갈 수도 있다.


1. KPI를 '해킹'하여 S등급 받는 법


인사팀이 원가 절감(Cost Saving)만을 절대적인 KPI로 내려보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올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할까?

가장 싼 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로 바꾼다. (품질 리스크는 내년의 문제다.)

대량으로 구매하여 단가를 낮춘다. (창고가 터져 나가고 재고 비용이 늘어나는 건 물류팀의 문제다.)

납기가 불안정해도 싼 곳을 택한다. (생산 라인이 서는 건 생산팀의 문제다.)


내 성과표(KPI) 상의 숫자는 아름답다. 원가는 획기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품질 이슈로 고객 클레임이 들어오고, 과잉 재고로 현금 흐름이 막힌다. 나는 KPI를 달성했지만, 회사는 손해를 봤다. 이것이 바로 KPI가 가진 '부분 최적화'의 저주다.


2. 인사팀의 한계: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중소/중견 기업의 인사팀(HR)이 현업의 디테일을 모른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인사팀은 채용(Recruiting)유지(Retention), 그리고 근태 관리에 매몰되어 있다. 구매팀이 단순히 '물건을 싸게 사 오는 부서'가 아니라, 'Q(품질), C(비용), D(납기)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조율하는 부서'라는 것을 이해하는 HR 담당자는 드물다.


그들이 부서 간의 상호 연결성을 보지 못하고 단편적인 숫자만으로 평가를 내리려 할 때, 실무자는 딜레마에 빠진다. "회사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평가를 나쁘게 받을 것인가, 아니면 KPI를 요리조리 피해서 내 밥그릇을 챙길 것인가?"


3. 평가가 아닌 '임팩트'를 보라 (OMTM으로의 전환)


그래서 우리는 KPI(평가 지표)가 아니라 OMTM( One metric that matter, 성장을 위한 단 하나의 지표)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사팀이 진정으로 회사의 성장을 원한다면, 구매팀에게 단순히 "돈을 아껴라"라고 지시해선 안 된다. 대신 "우리 제품의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매 전략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단순 원가 절감액이 아니라, '총 소유 비용(TCO) 절감'을 보고 있는가?

단순 납기 준수가 아니라, '생산 유연성 확보'에 기여했는가?


지표는 목적지가 아니라 나침반이어야 한다. 나침반이 고장 나면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1등을 하게 된다. 숫자로 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를 감시하는 눈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올바른 질문이다.


인사팀이여, 책상 앞의 엑셀을 덮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래야 비로소 진짜 '성과(Performance)'가 무엇인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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