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시킬 열쇠인가?

마르크스가 AI를 본다면..

by 구매가 체질

​오늘날 우리 앞에는 기묘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챗GPT라는 거대한 뇌가 공중에 떠다니고, 그 밑으로는 인간의 팔다리를 그대로 본뜬 이족보행 로봇들이 공장 바닥을 성큼성큼 걸어 다닙니다. 마르크스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그는 이것을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기계에 통째로 이식되는 종말론적 현상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에게 기계란 언제나 노동자가 흘린 땀과 지식이 굳어버린 결정체, 즉 죽은 노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AI와 로봇은 그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과거에는 기계가 인간의 망치질을 대신했다면, 이제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걷는 법, 심지어 감정을 표현하는 근육의 움직임까지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탈취하여 박제합니다. 우리가 AI에 질문을 던지고 로봇의 움직임을 교정해 줄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기계에 헌납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던졌을 법한 가장 뼈아픈 모순에 직면합니다. 노동 가치설에 따르면 물건의 가치는 그 속에 들어간 인간의 노동 시간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고 로봇이 24시간 내내 찍어낸 상품에는 과연 어떤 가치가 남아있을까요? 인간 노동자가 사라진 공장에서 자본가는 누구를 착취하여 이윤을 얻고, 월급을 받지 못하는 대중은 그 로봇이 만든 풍요를 무슨 돈으로 구매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한 일자리 상실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가 논리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파산 선고와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해방의 열쇠를 손에 쥐고도 감옥의 문을 더 굳게 잠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술적으로는 인류 모두가 노동에서 해방되어 각자의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유토피아의 문턱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강력한 생산 수단이 여전히 자본의 소유로 남아있는 한, AI와 로봇은 해방의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를 생산 현장에서 영구히 추방하고 그들의 존재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거대한 배제의 벽이 됩니다.

​결국 질문은 다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AI가 내놓는 정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로봇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던 미래입니까? 마르크스는 기술 그 자체를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기술을 소유한 자들이 설계한 관계의 비정함을 비판했습니다. AI와 이족보행 로봇이 활보하는 2026년, 우리는 이 기계적 괴물들을 인류의 노예로 부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가 데이터의 노예가 되어 자본이 설계한 가장 효율적인 감옥 안에서 안락사당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해방은 기술이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라, 그 기술을 향한 우리의 주체성을 회복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당신의 노동이 기계의 데이터로 치환되고 있는 지금, 당신은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어떤 인간적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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