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훔쳐간 내 '노동 시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가

by 구매가 체질

사무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웅성거림은 여전하지만, 그 밀도는 예전 같지 않다.


어제는 두 시간이 걸리던 데이터 시뮬레이션이 오늘은 프롬프트 한 줄에 3초 만에 끝났다. 텅 빈 모니터가 나를 응시한다. 줄어든 것은 업무 시간만이 아니다. 내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던 그 지루한 과정, 즉 '고생의 증거'들이 통째로 증발해버렸다.


남들도 그럴까? 확신하건대, 그렇다. 다만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1. 침묵의 컨스피러시: '바쁨'을 연기하는 사람들

지금 사무실 도처에서는 기묘한 연극이 벌어지고 있다. AI가 10분 만에 끝내준 보고서를 앞에 두고, 우리는 차마 '다 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너무 빨리 끝냈다는 사실이 나의 무능이나 대체 가능성을 증명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줄어든 업무 시간만큼 '바쁜 척'을 설계한다. 메신저 응답 속도를 조절하고, 이메일 예약 발송 기능을 이용해 밤늦게 일한 척을 한다. 효율이 극에 달한 시대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인 '기다림'을 연기한다. 이것이 AI 시대 화이트칼라들의 슬픈 기만이다.


2. SCM의 비극: 리드타임이 사라진 뒤의 공포


공급망 관리의 핵심은 리드타임의 단축이다. 하지만 지적 노동의 리드타임이 '제로'에 수렴하는 순간, 우리는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한다.


과거에는 '엑셀과 씨름하는 시간' 자체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물리적 실체였다. 하지만 이제 그 실체가 사라진 자리에 '판단'이라는 날것의 책임만이 남았다. 과정이 사라진 결과값은 너무 가볍고, 그 가벼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시금 불필요한 회의와 문서의 늪으로 숨어든다.


3. '잉여'라는 이름의 새로운 계급


이제 질문은 "남들도 업무 시간이 줄었는가?"가 아니라, "그 줄어든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 위장술을 쓰고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이는 줄어든 시간만큼 더 많은 루틴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고, 어떤 이는 그 공백에서 오는 공포를 견디지 못해 유튜브 창을 띄운다. 하지만 진짜 '전략가'는 이 잉여의 시간을 위장하는 데 쓰지 않는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질문의 깊이'를 만드는 데 쓴다.


모두가 바쁜 척 연기할 때, 홀로 텅 빈 화면을 응시하며 "그다음은 무엇인가?"를 묻는 사람. AI가 업무를 증발시킨 시대에 살아남는 유일한 종족은 바로 그 '응시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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