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참을 수 없는 경량의 무게

'가벼운 문명'이 숨기고 있는 것들

by 구매가 체질

송길영 작가는 말한다.


이제 소유는 거추장스럽고, 조직은 무거우며, 관습은 비효율적이라고.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보좌하는 '경량문명'은 우리에게 유연함과 개인의 자유라는 선물을 약속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이 가벼운 구름 위에 올라타기 위해 땅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1. 보이지 않는 '중량 노동'의 외주화


​우리가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가벼운 소비'를 즐길 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이들의 '무거운 노동'이 존재한다. 새벽을 가르는 택배 기사의 발걸음, 거대한 서버를 식히기 위한 막대한 에너지, 그리고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저임금으로 데이터를 분류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나의 가벼움은 타인의 무게를 담보로 한다. 문명이 가벼워질수록 그 가벼움을 지탱하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와 노동의 격차는 더욱 극심해질 위험이 있다.


2.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취약성'


​경량문명의 핵심은 최적화와 효율이다. 불필요한 재고를 없애고, 중간 단계를 생략하며, 모든 것을 데이터화한다. 그러나 여유가 없는 시스템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전쟁, 팬데믹, 혹은 단순한 네트워크 마비 상황에서 우리가 믿었던 경량 시스템은 얼마나 무기력했던가.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무거운 축적'과 '물리적 실체'가 문명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마찰 없는 관계가 주는 정서적 빈곤


​작가가 말하는 '핵개인'의 시대는 관계의 마찰을 최소화한다. 싫으면 차단하고, 불편하면 구독을 해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은 대개 '불편한 부딪힘' 속에서 일어난다.
마찰이 사라진 경량화된 관계는 매끄럽지만 차갑다.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공동체'라는 중력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유라는 이름의 고립과 '좋아요'로도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남을 뿐이다.


4. 깊이 없는 '스낵 지식'의 범람


​모든 것이 가볍고 빠르게 소비되는 문명에서 '숙성'의 가치는 퇴색된다. 수십 년을 천착해야 얻을 수 있는 학문적 깊이나, 고통스러운 사유 끝에 나오는 철학적 통찰은 경량화하기 어렵다.
우리는 AI가 요약해 준 3줄의 정보를 지식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의 근육은 무거운 고민을 들어 올릴 때 발달한다. 경량화된 사고는 우리를 영리하게 만들 순 있어도, 지혜롭게 만들기는 어렵다.


결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의 중력'이다


​경량문명은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흐름에 몸을 맡기더라도, 우리는 가끔 발을 땅에 굳건히 붙이고 물어야 한다. "내가 누리는 이 가벼움을 위해 누가, 무엇이 희생되고 있는가?" 진정한 문명의 진보는 단순히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가벼움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삶의 무게'를 지켜내는 데 있다.


우리는 가벼워지되 휘발되지 말아야 하며, 유연해지되 단단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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