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중산층일까

판교의 12,000원짜리 점심상 앞에서 던지는 경제학적 질문

by 구매가 체질

1.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나의 등급


점심시간, 동료들과 12,000원짜리 포케 한 그릇을 비우고 나와 7,500원짜리 오트 라떼를 손에 듭니다. 한 끼에 2만 원이 훌쩍 넘는 지출을 '직장인의 소소한 낙'이라 자위하며, 스마트폰 속 파란 불빛이 일렁이는 해외 주식 계좌를 확인하죠. 우리는 씁쓸한 농담처럼 말합니다.


이번 달도 통장은 순삭이네. 우린 언제쯤 진짜 중산층이 될까?

머릿속에서는 직업병처럼 계산기가 돌아갑니다. OECD 기준에 따르면 대한민국 중위소득의 75%에서 200% 사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대부분은 명백한 '중산층'입니다. 하지만 왜 우리 중 누구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느끼지 못할까요? 숫자는 '안정'을 가리키는데, 우리의 마음은 왜 늘 '결핍'이라는 가시 돋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 기묘한 괴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2. 한국의 중산층, 영국의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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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중산층의 조건을 자산의 규모로 정의하곤 합니다.


부채 없는 30평대 아파트 소유

월 급여 600만 원 이상

2,000cc급 이상의 중형차 보유

금융 자산 1억 원 이상


한국에서 통용되는 이 비공식적인 기준은 지독하리만큼 물질 중심적입니다. 반면,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정의했던 중산층의 기준은 사뭇 결이 다릅니다.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질 것, 사회적 약자를 도울 것, 외국어 하나쯤은 구사할 것.'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기준은 'Flow(흐름)''Stock(비축)'에만 집착합니다. 얼마나 쌓아두었는지가 계급을 결정한다는 논리죠. 하지만 진정한 경제적 자유는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를 다루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자산의 액수로 삶을 증명하려 하지만, 사실 삶은 그 자산을 어떻게 '시간'과 '경험'으로 치환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3.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


행동경제학에는 '쾌락의 쳇바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져도 금세 그 상태에 적응해버려 행복감이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뜻이죠.


우리가 스스로를 중산층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교 대상'의 오류에 있습니다. 내 옆의 동료가 아니라, SNS 속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을 표준으로 설정하는 순간, 우리는 연봉 1억을 받아도 '상대적 빈곤층'이 됩니다. 이는 가치 설계자 입장에서 볼 때 지독하게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현재의 행복'이라는 귀중한 희소 자원을 소모하고 있으니까요.


4. 나만의 '중산층 지수' 다시 쓰기


이제는 통계청의 분류법 대신, 나만의 경제적 서사를 위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21세기형 중산층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취향의 독립성: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가 무엇에 돈을 쓸 때 가장 심리적 효용이 큰지 정확히 아는가?

지적 자본: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통찰과 지식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는가?

회복 탄력성: 예상치 못한 경제적 타격이 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인적 네트워크, 기술)'이 있는가?


에필로그: 숫자를 넘어 가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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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과연 중산층일까?"라는 질문은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희소성 덕분에 우리의 '선택'은 가치를 지닙니다. 오늘 당신이 마신 커피 한 잔의 향미, 아이와 눈을 맞추며 보낸 주말의 시간, 그리고 고심 끝에 적어 내려간 글 한 줄.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무형 자산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통계 숫자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풍요로운 중산층'입니다.


당신의 중산층 지수는 오늘 몇 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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