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붙은 가격표

쎄시봉 공연과 '레트로 상업화'에 대한 단상

by 구매가 체질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판교. 그날도 점심을 먹고 잠시 사무실을 나섰을 때였다. 늘 보던 익숙한 빌딩 숲 사이에서, 눈에 익지 않은 현수막 하나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쎄시봉'.


솔직히 말해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이름들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낡은 카세트테이프에서, 명절에 방영되는 특집 쇼 프로그램에서 들어봤던, 그래서 어쩐지 내 어린 시절의 배경음악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는 이름들이었다. 부모님 세대의 청춘과 낭만이 담긴, 아련한 단어.


그 따뜻한 기분은 공연 가격표를 폰으로 찾아 본 순간 차갑게 식었다. R석 15만 4천 원.

잠시 멍하니 그 숫자를 보고 있었다. 내 것은 아니지만, 소중하게 느껴졌던 타인의 추억에 붙어버린 가격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라는 말은 때로 편리한 상업적 명분이 된다. 우리 세대가 어린 시절의 캐릭터 굿즈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고, Y2K 패션에 열광하는 심리를 자본은 정확히 꿰뚫어 본다. '쎄시봉' 공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타겟이 부모님 세대일 뿐, 추억을 자극해 소비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마지막 콘서트'라는 문구는 그 가격에 설득력을 더하는 마법 같은 주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정도는 지불해야 한다'는 시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결국 추억을 향유할 권리마저 세대를 불문하고 경제력에 따라 나뉘는 셈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값을 매길 수 없기에 소중했던 시간들이 모두 가격표를 달게 될 때,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도, 모니터의 하얀 빛과 현수막의 낡은 글씨가 머릿속에서 겹쳐 보였다. 결국 추억이란,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고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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