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다는 걸 알기 위해, 우리는 읽고 또 읽는다.
고요한 밤, 거실에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책 한 권을 꾸역꾸역 넘겨본 적 있는가.
지식의 탑을 한 층이라도 더 쌓아 올리면, 복잡한 세상과 내 삶의 문제가 조금은 선명해지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처음엔 그랬다. 책은 인생이라는 막막한 시험지 앞에 놓인 한 줄기 빛, 혹은 비밀스러운 해설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탑이 어설프게나마 허리춤까지 차오를 무렵, 나는 기묘한 배신감과 마주해야 했다. 선명해지기는커녕, 세상은 더 짙은 안갯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책장을 넘길수록 ‘정답’이라 믿었던 것들이 희미해지고,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망연히 서 있었다.
혹시 당신도 이런 막막함을 느껴본 적 없는가. 답을 찾으려 시작한 독서가, 세상에 답이란 없다는 사실만을 끊임없이 증명해주는 이 아이러니를 말이다.
처음, 책이 건넨 약속
우리가 처음 책을 집어 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무언가를 ‘알고’ 싶어서다.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에서 성공의 공식을, 역사책에서 세상의 이치를, 철학책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책은 현인들이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지혜의 정수이니, 그 안에는 분명 내 고민에 대한 해답이 있으리라 믿었다.
한 권의 책을 뗄 때마다 세상을 다 아는 듯한 충만감에 휩싸였다. 스피노자를 읽고 모든 불행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유발 하라리를 읽고 인간은 결국 허구의 이야기를 믿는 존재일 뿐이라며 냉소했다. 그때의 나는 단 하나의 진리를 손에 쥔 채 세상을 재단하는 오만한 판사였다.
정답지에 그어진 균열
문제는 두 권, 열 권, 백 권으로 넘어가면서 시작됐다. A라는 책이 말하는 행복과 B라는 책이 말하는 행복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떤 경제학자는 자유 시장이 만병통치약이라 말했지만, 다른 학자는 그것이 모든 불평등의 근원이라 지적했다. 같은 역사적 사건을 두고도 승자의 기록과 패자의 기록은 처참할 정도로 달랐다.
세상은 객관식 시험지가 아니었다. 모든 질문 아래에는 ‘모두 정답’ 혹은 ‘정답 없음’이라는 선택지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내가 그토록 신뢰했던 ‘정답지’는 수많은 관점과 해석의 칼날에 의해 사정없이 그어지고 찢겨 나갔다. 지식이란 단단한 하나의 성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모양의 돌들이 위태롭게 쌓인 거대한 무덤이었다.
그 무덤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어쩌면 세상에 확실한 답은 없다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그토록 찾으려 했던 답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쓰고 있었다는 모순, 그 거대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만의 나침반을 만드는 일
그렇다면 이 모든 지적 탐구는 결국 헛수고일까? 정답이 없다는 절망 앞에서 우리는 책을 덮어야만 하는가?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나는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독서의 목표는 애초에 완성된 ‘지도’를 얻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도 없는 망망대해를 건너기 위한 ‘나만의 나침반’을 만드는 과정에 더 가깝다.
수많은 책들은 나침반의 재료가 된다. 어떤 철학자의 문장으로 바늘을 벼리고, 어떤 역사학자의 통찰로 방향을 가늠할 눈금을 새긴다. 어떤 소설가의 이야기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줄 몸체를 깎고, 어떤 과학자의 발견으로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운다.
이 나침반은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북쪽을 가리키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멋대로 흔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나는 타인이 그려준 지도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대신, 내 손에 들린 작은 나침반에 의지해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하다.
그러나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다.
오늘도 난 이 막막한 자유 속에서, 나만의 해답을 찾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앎의 과정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