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믿지?
드디어 우리 회사가 외부 투자를 유치하고,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뤄 법정 외부감사를 처음 받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은 자신 있습니다.
"매출 목표도 초과 달성했고, 숫자도 명확한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그런데 막상 연말 외부 감사가 시작되자, 감사인의 질문은 예상과 다릅니다.
"이 12월 28일 자 매출 1억 원에 대한 제품이 고객사에 전달되었다는 인수증이나 배송 완료 증빙을 보여주시겠어요?"
"이 소프트웨어 구독 계약은 3년 치 금액을 일시에 받았는데, 왜 올해 매출로 전부 인식하셨죠? 수익 인식 기준이 어떻게 되시나요?"
"A 고객사에 대한 할인율은 왜 B 고객사와 다른가요? 가격 결정 및 할인 정책에 대한 내부 승인 자료가 있나요?"
이 순간 많은 대표님들의 머릿속은 하얘집니다. 저 역시 과거 상장 심사라는 중요한 관문을 앞두고 재무제표를 사실상 재작성해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시간은 KTX처럼 흘러가는데, 감사인이 과거 매출에 대해 요구하는 '증빙'과 '수익 인식 논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분명 돈 받고 세금계산서까지 발행한 '진짜 매출'인데도 말이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감사인은 숫자의 결과가 아닌 과정의 근거를 신뢰하며, 그 신뢰는 결코 말로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오늘은 법인카드 경비 처리 같은 내부 살림을 넘어, 기업의 심장인 '매출'이 외부감사라는 까다로운 검증대를 통과하기 위해 어떤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외부감사인의 핵심 목표는 재무제표의 숫자가 '진실한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숫자를 만들어내는 회사의 '시스템'이 신뢰할 만한가를 검증하는 것입니다. 매출 100억이라는 최종 숫자보다, 그 100억이 만들어지는 과정 하나하나가 합리적이고 일관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감사인이 당신의 매출을 보며 던지는 핵심 질문은 사실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발생 사실 (Occurrence): 이 매출, 정말로 일어난 거래인가? (유령 매출은 아닌가?)
완전성 (Completeness): 기록해야 할 매출이 혹시 누락되지는 않았는가?
정확성 (Accuracy): 금액, 수량, 계산은 정확하게 기록되었는가?
기간 귀속 (Cut-off): 그 매출, '올해'의 실적이 확실한가? (내년 매출을 미리 당겨온 것은 아닌가?)
계약서와 세금계산서만으로는 이 모든 질문에 완벽히 답할 수 없습니다. 감사인을 만족시키는 답은 바로, 잘 짜인 매출 프로세스와 그 과정에서 자동으로 쌓이는 증거들 입니다.
우리 회사의 매출이 일어나는 과정을 A부터 Z까지 따라가 보며, 각 단계에서 감사인이 어떤 증거(내부통제)를 찾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거래는 고객과의 약속에서 시작됩니다. 감사인은 이 약속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되는지 봅니다.
통제 포인트: 표준화된 계약서 양식, 명확한 가격 및 할인 정책, 신규 거래처에 대한 신용 검토 절차.
감사인의 질문: "모든 계약은 서면으로 관리되고, 담당자가 임의로 가격을 정할 수는 없습니까? 중요한 계약 조건 변경 시 내부 승인을 거칩니까?"
준비할 것: 계약서 관리대장, 내부 품의서(특히 비표준 거래 시), 가격 정책표.
매출 인식의 가장 핵심적인 단계입니다. 계약만 하고 실제 물건이나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면 매출이 아닙니다. 감사인은 '의무를 이행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찾습니다.
통제 포인트: (제품) 출고 지시서, 운송장, 고객이 서명한 인수증. (서비스) 프로젝트 완료 보고서, 고객의 검수 확인서.
감사인의 질문: "모든 출고는 주문에 근거하며, 고객이 물건을 잘 받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프로젝트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시죠?"
준비할 것: 고객의 서명이 포함된 물품 인수증, 배송업체 운송장 조회 내역, 서비스 완료에 대한 이메일 확인 등 객관적 증빙. 이것이 없으면 세금계산서는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고객에게 돈을 달라고 청구할 차례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제공한 만큼, 정확한 금액으로' 청구되는지가 핵심입니다.
통제 포인트: '물품 인수증'에 기반한 세금계산서 발행, 청구서의 순차적 번호 관리, 발행 전 금액 및 수량에 대한 이중 확인 절차.
감사인의 질문: "세금계산서 발행 근거가 무엇입니까? 출고 기록과 일치합니까? 사람이 수기로 입력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어떻게 방지합니까?"
준비할 것: 출고 기록과 세금계산서 발행 내역의 대사(Reconciliation) 자료.
마지막으로 돈을 받고 장부에 기록하는 단계입니다. 모든 돈이 빠짐없이, 제 주인을 찾아 기록되는지를 확인합니다.
통제 포인트: 통장 입금 내역과 매출채권(받을 돈)의 주기적인 대조, 장기 미회수 채권에 대한 관리 및 보고 절차, 입금 처리 담당자와 장부 기록 담당자의 분리.
감사인의 질문: "입금된 모든 내역은 매출채권에서 잘 차감되고 있습니까? 몇 달째 회수되지 않는 돈은 왜 그런지 파악하고 있습니까?"
준비할 것: 은행 입출금 내역과 매출원장의 대사표, 연령분석(Aging report)을 포함한 매출채권 현황 보고서.
외부감사를 받는다는 것은 회사가 다음 단계로 성장했다는 자랑스러운 증표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열쇠는 결국 '시스템'에 있습니다.
매출에 대한 내부통제는 단순히 직원을 감시하고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게 하고, 모든 과정의 '증거'가 자연스럽게 쌓이도록 만드는 '매출 증명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잘 구축된 시스템은 까다로운 감사인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 대표님께는 우리 회사의 진짜 실적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이야말로 회사를 더 큰 무대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