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후에 안식을 얻습니다

by 정용수

세월 가면 누구나 잊혀집니다.

아낌없이 정 주었던 사람에게도

세월 가면 속절없이 잊혀집니다.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었던

버거운 세월 앞에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미안한 손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잊혀 질 뿐입니다.


낯선 골목길 담장 위로 사라지던

무심한 고양이의 꼬리처럼

내 존재의 기억도

슬그머니 사라질 뿐입니다.


행여 혼자 남게 될 시간이 길어진다면

인연 같은 악기라도 하나 골라

노을 닮은 소리를 연주하는

온전한 고독이나 즐기며 살아갑시다.


정말 아픈 슬픔은

나누려 하지 말고

혼자 보듬고 떠나갑시다.


외딴 산모퉁이 이름 없는 무덤처럼

쓸쓸히 사그라져가도

슬퍼하지도, 억울해 하지도 말고


골목길 담장을 넘는 고양이처럼

남겨진 시간 속으로 담담히 걸어갑시다.


잊혀진 후에

드디어 우린 안식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