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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끼리는 겸손하게

by 정용수

사립학교 교사로 오래 근무하다 보면

제자들과 함께 교사 생활을 하게 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훌륭한 교사가 되어 모교로 돌아온 제자들과 함께

교사 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교사로서 어설펐던 전날의 내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해 그 부끄러움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당한 폭력, 감정적인 언어 사용, 왜곡된 가르침을

한 적은 없었는지를 반성하다 보면 한밤중에도 이불을 걷어차게 됩니다.


한때 나의 가르침을 받던 철부지 학생이 지금은 나보다 몇 배나 훌륭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잘 지도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먼저 태어나 먼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인격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초보입니다.

초보끼리는 서로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지위가 높으니까

‘네가 알아서 맞추고, 낮춰라.’라는 식의

불평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건 지혜로운 모습이 아닙니다.

설령 상대가 나이 어린 학생일지라도

‘상대와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시작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의지를 우린 겸손이라고 부릅니다.

겸손은 무조건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서 있는 지점에 나란히 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마음입니다.


적어도 서른살을 넘긴 성인들끼리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어른스러운 것이 아님을 일상에서 자주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나이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어제의 제자가 오늘의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에 그렇습니다.


겸손은 평범한 일상의 만남도 오래가는 소중한 인연으로 만들어 가는 힘이 있습니다.

내 입장만, 내 목소리만 주장하는 편협한 자리에 벗어나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다가간다면 우린 훨씬 더 향기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부디 초보끼리는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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