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떠나 자연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매일 마시는 도시의 공기가
얼마나 오염되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언젠가 밭에서 직접 따서 먹은 수박 맛은
내가 알던 수박 맛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바다낚시에서 바로 잡아 소금 쳐서 구운 고등어 맛은
오랜 유통과정을 거쳐 밥상에 오른 고등어 맛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습니다.
대학시절 지리산 정상에서 바라본 밤하늘에는
대구에서는 보이지 않던 엄청난 별들이
쏟아질 듯 많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오염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우리는
오염되기 전 원래의 모습들을 너무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문명인으로 편하고 위생적으로 잘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린
자연 본래의 맛과, 아름다움과 기쁨을 경험하지도 못한 채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맛과, 아름다움과 기쁨을
진짜인 냥 착각하며 사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모르고 사는,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가 지키지 못한
본래의 맛과 깨끗함, 아름다움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서울 어느 지역의 초등학생들은
생일 파티에 초대할 친구를 아파트 평수로 결정한다는
참 슬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50평 아파트에 사는 아이는 50평 이상 사는 아이에게만
생일초대장을 준다고 합니다.
재산, 학력 수준에 따라 사람을 사귀는 비정상적인 소통의 방법을
우리 아이들은 일찍부터 정상적인 것처럼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랑함이 정상(正常)입니다.
함께 행복함이 정상(正常)입니다.
겸손함과 예의바름이 정상(正常)입니다.
노약자에게 기꺼이 자리를 양보함이 정상(正常)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이런 정상(正常)적인 삶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도덕적 공동체가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아픔입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뒤 따라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몇 초간 문을 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우린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잠깐의 양보 운전, 친절한 전화 응대, 진심이 담긴 인사 등등..
우리 이웃들에게, 그리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참다운 인간관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가르칠 수 있도록
이런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非正常적인 사람이 다수라 할지라도
正常의 편에 서서
본래의 맛과 깨끗함과 정의를 지켜가려는
현명한 소수들이 우리 사회에 점점 더 많아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