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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스빈 May 31. 2023

아들 낳는 비법

지금은 딸 낳는 비법이 대세!


지금은 딸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비법이라 소개하기가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그땐 그랬지 라는 라테 이야기로 들어주시기 바란다.     




7일간의 사랑!

대학생 때 보았던 이 한 편의 영화는 내 인생에 하나의 목표점을 지향하게 만들었다.


미국 어느 대학 교수인 밥은 세미나 참석차 프랑스로 가게 되고 밥은 그곳에서 여의사 니콜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노을이 지는 해변에서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사랑을 나누게 된다.


난 노을이 짙은 바다에서 둘이 나누던 사랑을 아직도 기억하며 나도 언젠가 저런 멋진 사랑을 해보리라 꿈도 꾸어보았지만 현실은 한 번도 누구랑 바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오늘 발견한다. 역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게 딱 7일의 세미나 일정동안 그들은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7일 후 밥은 미국으로 떠나가고 둘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후로 그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했던가 그렇게 둘은 처음의 남남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동료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10여 년 전 프랑스에서 만났던 그 여의사 니콜이 어제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녀에겐 아들이 한 명 남겨져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그 남자아이가 바로 밥의 아들이라는 말과 함께. 여태껏 그 여의사는 유부남인 밥에게 차마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그녀 혼자 아들을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아들을 밥은 미국으로 데려와서 만나기로 한다. 밥은 아내에게 10년 전의 일을 말하고 아들을 집으로 초청하게 된다. 미쿡이니 가능한 일이겠지! 밥에겐 딸이 셋 있었고  딸들에겐 아빠 친구의 아들이 프랑스에서 놀러 와서 집에서 며칠 같이 지내기로 했다고 말하고 며칠을 같이 머물게 된다.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넘겨가던 어느 날 딸들은 결국 아빠 친구의 아들이라고 믿었던 그 아이가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두 충격에 휩싸이고 만다. 그리고 더는 한집에 같이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하는 딸들의 반응에 결국 아들은 다시 프랑스로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보내야만 했던 밥의 절망감에 짙게 물든 그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30년도 지난 이 한 편의 영화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이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공항의 이별장면이다. 한 번도 아빠라고 불러본 적 없는 아들은 공항에서 저 멀리 보이는 밥을 향해

"아빠!"

하고 부르며 달려가 아빠의 품에 안겨 눈물의 상봉(아니 이별장면)을 하던 바로 그 장면. 난 왜 그 장면이 그 나이의 나에게 그렇게 꽂혔는지 모르겠다. 구레나룻 수염을 얼굴 가득 담고 있던 그 밥이라는 남자 주인공이 멋있어서 나도 그땐 수염을 길렀었다. 물론 밥만큼은 아니지만....ㅋㅋ


절대 남아 선호사상을 가진 사람은 아니건만 그렇게 내 핏줄 내 아들을 나도 저렇게 애틋하게 안아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른 결혼을 하고 자녀 계획을 가지면서 난 당연히 아들을 먼저 낳아야겠다는 확고한 소망을 가지게 된다.


나의 아내는 딸부잣집 5녀의 장녀!

아들 하나를 얻기 위해 낳고 또 낳았건만 딸만 내리 다섯을 낳은 처갓집의 내력을 살펴보건대 필시 확률상으로는 딸을 낳을 가능성이 더 농후해 보였다.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아들 낳기 위해 다시 제주행(신혼여행지 제주에서 돌하르방 코를 많이도 만지고 왔었더랬다.) 비행기를 타고 가서 돌 하르방 코를 만지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들 낳는 비법을 알기 위해 책을 찾아도 보고 물어도 보면서 나만의 아들 낳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다.


이건 정말 1급 노하우이긴 하지만 브런치 독자님들을 위하여 무한 방출한다.

1. XX(여자) 염색체와 XY(남자) 염색체 중 운동 활동량이 월등한 녀석이 바로 XX이다. 따라서 먼 거리 출발점에서 '요이땅' 하고 출발하는 장거리 경주에서는 XY가 이길 확률은 그만큼 떨어진다. 가능하면 출발점을 난자 가까이에서 출발하는 단거리 경주만이 XY의 승률을 장담할 수 있는 것이다.

2. 여성의 배란일에 정확히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난자의 수명은 24시간! 그 시간 안에 반드시 XY와 난자를 만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3. 배란일 당일 여성의 몸은 알칼리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소다수를 이용하여 씻어준다.

4. 도킹의 시간은 밤 12시 ~ 1시 사이


맞는 것도 있을 수 있고 틀린 것도 있을 수 있다 과학적인 방법일 수도 전혀 얼토당토 아닌 방법일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고 이 내용을 미신처럼 믿으며 철저한 계획아래 실행에 옮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내용을 진리처럼 믿고 있는 나를 또 믿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당시만 해도 배란일 진단 시약이라는 것이 없어서 배란일을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모눈종이와 혀밑에 넣어서 온도를 재는 체온계를 준비해서 배란일을 매일매일 체크하는 것이었다


3개월을 진행해 보면 대강의 패턴이 나오는 관계로 나는 3개월 동안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미동도 못하게 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는 아내의 입에 체온계를 물리고 체온을 확인한 다음 벽에 붙여놓은 모눈종이에 그날의 체온을 하루하루 점으로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을 하니 배란일에 평소 체온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체온의 변화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패턴을 다시 2개월간의 검증과정을 거쳐서 정확한 배란일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신의 가호와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그날 드디어 우린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병원에서 임신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만나 볼 시간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10개월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호두와 밤을 매일 밤 깎아서 먹이고(?)  배속의 태아에게 매일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며 흐뭇해했다. 산부인과에서는 중간중간 초음파로 태아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지만 의사 선생님도 성별을 말씀해 주시지 않았고 나도 구태여 물어보질 않았다. 나의 오랜 계획에 대한 확신과 또는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 같은 것이 혼재한 상황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10개월의 시간이 지날 즈음 아내는 친정이 있는 진주로 출산을 위해 내려가고 혼자 서울에 남아 애타게 출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매스컴에서 휴거일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휴거상황과 맞물려 세상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세상의 종말이 오고 선택받은 자만이 하늘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그날!


1992.10.28일 새벽 장모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드디어 출산 소식을 듣게 되다니... 궁금증과 기대로 장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임서방 아들이다!!!!

휴거일에 태어난 아들!   

다들 올라가려고 난리를 치던 그날 나의 아들은 거꾸로 세상으로 내려왔다.


당신도 못 낳아본 아들을 큰 딸이 낳았으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난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 살아가며 자식을 얻는 기쁨보다 더한 기쁨을 나는 아직 맛보지 못했다.


하늘이 떠나갈 듯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새벽 시간에 괴성을 지를 수도 없어서 속으로 참으며 혼자 기쁨의 세레나데를 불렀더랬다.


그땐 토요일도 근무를 하는 시기였고 사회초년생이 휴가를 내고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고속버스를 타고 내 아들과 아내가 있는 처갓집으로 내려갔다. 첨으로 만나보는 내 아들!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렸던 내 아들을 드디어 안아보는 날이었다.

오 신이시여!

이 신생아가 저의 아들이란 말입니까? 내 품에 안긴 아들을 바라보며 난 평생 최고의 기쁨을 맛보았던 거 같다. 1박 2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발걸음은 정말 죽기만큼 싫었다. 차 시간은 다가오고 내 품에 안긴 아들은 내려놓기 싫고 아! 어쩌란 말인가 ㅠㅠ 결국 난 그렇게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리며 아내에게 아들을 맡기고 다시 서울로 향하게 되었더랬다.  그땐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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