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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글쓰기 다섯 번째 글. (엄마의 노래)

엄마의 노래

by 청일


서울에 자리를 잡았지만, 명절이면 나는 늘 고향 진주로 향했다. 길이 아무리 막혀도, 눈보라가 몰아쳐 열 시간이 넘게 걸려도, 돌아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나를 기다리는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마치 길 위의 한 점처럼 고향을 향해 묵묵히 나아갔다.


그날도 그렇게 온 가족이 모여 추석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형님 가족과 우리는 함께 음식을 나누고, 성묘를 다녀오고,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들었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 술잔을 앞에 놓고 두 아들을 불러 앉히셨다. 술기운이 조금 오르자, 우리 가족은 근처 노래방으로 향했다.


부모님과 함께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 노래방이었다.


아버지는 평소 즐겨 부르시던 ‘울고 넘는 박달재’를 선곡하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세월을 닮아 있었고, 그 곡조는 언제나처럼 깊고도 애틋했다. 우리는 돌아가며 한 곡씩 불렀다.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지만, 엄마만은 끝내 마이크를 들지 않으셨다.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어떤 음색일까, 어떤 감정을 담아 부르실까. 그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듣고 싶었다.


“엄마도 한 곡 불러봐요.”


내가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엄마는 망설이는 듯 보였다. 한참을 주저하던 엄마는 결국 천천히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손길로 곡을 선택하셨다.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반주가 흐르며 화면에 노랫말이 떠올랐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엄마의 목소리가 조용히, 그러나 깊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 노랫말 속에서 엄마의 삶을 보았다.


참아야만 했던 세월, 말할 수 없던 아픔, 혼자 견뎌야 했던 순간들. 엄마는 그저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 노래 속에서 엄마의 지난날을 읽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을 엄마. 때로는 외롭고 힘들었을 테지만, 한 번도 내색하지 않던 엄마.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를 ‘한 여인’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엄마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인간의 삶. 사랑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꿈꾸고 싶었을 어린 시절의 엄마, 그리고 한 여자로서의 엄마를 나는 한 번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엄마는 담담하게 노래를 부르고 계셨지만, 나는 그 노래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을 찌르는 듯 아팠다.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처음으로 들었던 엄마의 노래는 나를 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노래는 엄마가 떠난 후에도 내 가슴속 깊이 남아, 그리움이 되었다.


지금은 먼 하늘나라에 계신 나의 엄마. 당신은 언제나 자식을 위해 당신의 삶을 내어주셨지요.


그 사랑을, 그 헌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소풍이 끝나면, 그때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꿈에서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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