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봄 생각

by 청일

오래간만에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어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매화가 가지마다 하얗게 피었고, 개나리는 노란 꽃망울을 품에 안고 있었다. 거리마다 스며든 연둣빛 기운, 바람 끝에 묻어오는 흙내음이 이제 정말 봄이 왔음을 알게 한다. 누군가 올린 봄꽃 사진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계절이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월의 흐름을 어떻게 실감할 수 있을까.


한겨울,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 겨울도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그리고 결국, 시간은 흘러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왔다. 하지만 요즘은 봄이 너무 짧다. 시장에서 후루룩 먹는 국수 한 그릇이 젓가락 두세 번에 사라지듯, 봄날도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러니 그냥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이 짧은 시간을 온몸으로 껴안아야 한다. 산으로, 들로, 봄을 찾아 나설 것이다. 꽃잎이 흩날리는 길을 걸으며 두 볼에 스치는 봄바람을 느끼고, 연둣빛 새순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을 것이다. 겨우내 차가웠던 대지가 따뜻한 온기를 머금을 즈음이면, 쑥의 새순도 얼굴을 내밀겠지. 칼 한 자루, 바구니 하나 들고 들판으로 나가 쑥 향기를 한가득 담아 올 것이다. 쑥버무리를 해 먹고, 된장 풀어 구수한 쑥국도 끓일 것이다. 입안 가득 퍼지는 봄의 맛.


산에는 분홍빛 수줍음을 머금은 진달래가 피어나겠지. 거칠어진 손이지만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꽃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을 것이다. 꽃잎을 얹은 따뜻한 화전 한 입에 봄이 사르르 녹아들 듯 스며들 것이다.


이 계절이 머물러 주기를 바라지만, 봄은 늘 가장 먼저 떠나버린다. 그러니 붙잡을 수 없다면, 온전히 느끼고 보내야겠다. 눈으로, 손으로, 향기로, 맛으로. 온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고, 보내야겠다.


다시 봄이 오려면, 족히 1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