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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by 청일


산다는 것은 세월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역류할 수 없기에, 우리는 흘러가는 풍경들을 그저 눈과 마음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다. 과거의 기억들은 조용히 마음 한편에 쌓여 있다가도, 문득 한 편의 글을 통해, 낡은 사진 한 장을 통해, 혹은 누군가의 말을 통해 불쑥 떠오르곤 한다.


박완서 작가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으며 그런 순간을 맞이했다. 책 속에는 1970년대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겹쳐지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맞아, 그땐 그랬었어. 마치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듯, 오래된 기억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장발 단속 허래허식 타파와같은 구시대적 발상도 있었고 겨울을 나기 위해 가정에서 준비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김장을 하고, 연탄을 창고 가득 쟁여 놓아야 비로소 겨울맞이가 끝났다고 여겼던 때. 박완서 역시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글을 쓰는 작가였음에도, 남녀 차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말씀들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던 여성에 대한 인식들이 떠올랐다.


그때로부터 몇십 년이 흘렀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남녀의 역할에 대한 인식도, 사회의 구조도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가 남아 있음을 우리는 종종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지나온 세월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마치 내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려주는 듯, 책 속에 빠져 한동안 추억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또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졌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언젠가 미래의 어느 날엔 과거의 삶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흘러가는 대로 두기보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와 발상으로 채워가야 하지 않을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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