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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로 만든 순두부찌게

순두부 튜브와 봄비 한 그릇

by 청일


아침에 거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도로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밤새 봄비가 내린 모양이다. 쨍한 햇살이 반기는 아침도 좋지만, 간만에 내린 봄비로 촉촉해진 세상의 풍경은 더없이 반가웠다.

아침 나의 루틴은 일어나자마자 입을 헹구고 음양탕을 마시기 위해 포트에 물을 올린 뒤, 베란다 창가로 스며드는 햇빛을 받으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따스한 햇빛대신 비에 젖은 공기처럼 잔잔하고 부드럽게 하루를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침대에서 몸을 빼내는 순간 아내의 한마디가 귓가에 박혔다.

“오늘 아침은 뭘로 하지…”

별말 아닌 듯했지만, 그 말은 내 마음을 묘하게 무겁게 만들었다.

한 번도 아침 메뉴를 고민해본 적 없는 나와, 평생을 먹거리로 고민해왔을 아내.

같은 집 같은 시간속에 살아왔지만, 우리가 짊어져온 걱정의 무게는 달랐다.


오늘 아침은 내가 만들어보리라.

냉장고 문을 열고 눈으로 재료를 훑었다. 순두부, 모두부, 그리고 순두부 양념장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부는 데쳐서 김치볶음을 얹어 두부김치를 만들고, 순두부는 양념장에 넣어 찌개를 끓이면 될 것 같았다.


비닐 튜브 속에 길쭉하게 담긴 순두부는 마치 커다란 쮸쮸바 같았다.

“오, 이건 그냥 짜서 쓰라는 뜻이구먼!”

나는 순두부 튜브 끝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뚝배기에 마요네즈 짜듯이 순두부를 짜 넣었다.

양념장도 넣고, 호박과 대파도 썰어 넣었다.

프라이팬에 김치를 볶으며 이쯤이면 아내도 감동하겠지, 하는 생각에 살짝 으쓱했다.


그때, 아내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나는 반찬을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여보, 오늘 아침은 내가 해결했어.”

하지만 돌아온 건 따뜻한 미소가 아니라 예상외의 한마디였다.

“여보… 지금 뭐하는 건데?”

“응? 순두부찌개 끓이는 중인데?”

“아니, 순두부를 누가 짜서 넣어?”

튜브에 담긴 순두부는 이렇게 짜서 조리하는건 줄 알았던 나는그래도 자신 있게 말했다.

“그냥 먹던 대로만 먹는 게 어딨어. 새로운 방식도 나쁘지 않잖아?”


아내는 말문이 막힌 듯 웃지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순간, 뭔가를 크게 잘못했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어찌됐든, 짜서 만든 순두부찌개는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췄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그 찌개를 나눠 먹었다.

모양이 좀 독특했을 뿐, 맛은 괜찮았다.

아내도 몇 숟가락을 뜨더니 말없이 먹었다. 그게 최고의 칭찬일지도 모른다.


물론, 먹는 내내 “다음엔 꼭 물어보고 해”라는 잔소리는 곁들여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 속엔 걱정도, 사랑도, 익숙한 다정함도 함께 있었다는 걸.


오늘 아침, 나는 욕을 한 바가지 듣고도 순두부찌개 하나로 한 그릇의 사랑을 배웠다.

다음엔 물어보고, 더 잘 끓이고, 더 정성껏 담아야겠다.

비 오는 날, 그릇 속에 담긴 건 순두부만이 아니었다.

조금 서툴지만 진심인, 내 마음 한 스푼도 함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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