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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같은 봄

3월 마지막 주말

by 청일


주말 아침, 독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늘게 흩날리던 눈발이 이내 거센 바람을 타고 휘몰아쳤다. 두 주 전 내렸던 눈이 올겨울의 마지막일 거라 믿었는데, 봄을 재촉하던 따뜻한 햇살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송이들이 춤을 추었다. 그러다 갑자기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던 눈발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기루를 본 듯한 순간, 계절이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와 있었다. 강아지들을 데리고 불암산 애기봉으로 향했다. 바람이 불었지만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고, 하늘은 맑고 투명했다. 산길을 따라가자 진달래가 수줍은 분홍 입술을 내밀고 봄을 속삭였다. 하천가엔 제비꽃이 피어 있고, 이름 모를 작은 풀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반짝였다.


매화는 꽃망울을 터뜨렸고, 목련도 크고 탐스러운 꽃잎을 활짝 펼쳤다. 바야흐로 봄이었다. 이제 곧 벚꽃의 계절이 오겠지. 강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면, 사람들은 저마다 봄에 취해 그 길을 걸을 것이다. 매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기다림에 설렌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들이 꽃을 틔울 거란 걸 알면서도, 그 기적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감탄하고 만다.


그러나 긴 겨울을 지나며 가끔은 의심이 들었다. 정말 봄이 올까? 이 차디찬 추위 속에서 새싹들은 견뎌낼 수 있을까? 하지만 봄은 언제나 그 미련한 걱정을 거둬내고, 우리를 환한 빛 속으로 이끈다.


오늘 내린 눈발은 마지막 몸짓처럼 흩날리다 사라졌다. 마치 봄이 오기 전, 겨울이 놓고 가는 장난 같은 흔적 같다. 이제 정말 마지막일 거라 믿으며, 성큼 다가온 봄을 두 팔 벌려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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