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달리는 자전거

모리와 함께한 라이딩

by 청일

느리게 달리는 자전거


때론 빠르게 달려가는 것보다 사방을 조우하며 천천히 달리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인생도 그렇다. 젊은 날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시절에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앞만 바라보며 끝없는 전진만이 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덧 삶의 의무를 다해가는 나이가 되니, 문득 걸음을 늦추어 주위를 바라보고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로드 자전거는 목표를 정해두고 그곳만을 향해 달려가는 속성을 지닌다. 힘겹게 페달을 밟아 도착한 지점에서의 성취와 쾌감은 다시금 안장에 오르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트라이폴드는 다르다. 빠르게 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멀리 가는 대신 가까운 거리를 천천히 달리며, 길가에 숨어 있던 풍경을 발견하면 멈춰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품은 자전거다.


그래서 혼자 달릴 때면 나는 주로 트라이폴드를 꺼낸다. 작은 자전에 몸을 싣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면, 눈앞의 풍경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풍경이 다가온다. 아직은 더운 날씨지만 해 질 무렵이 되면 한결 선선해진다. 저녁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면, 지금이야말로 자전거 타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트라이폴드를 꺼냈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자전거 바구니엔 모리가 앉아 있었다.

모찌, 모리, 하루, 하치. 우리 집 네 마리의 비숑 중 아빠인 모리는 서열이 제일 낮다. 사람이나 강아지나 아빠의 운명은 비슷한 모양이다. 늘 모리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모리는 내게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또 다른 ‘모리’의 빈자리를 이 아이가 대신 살아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유독 마음이 많이 쓰인다.


오늘은 모리를 자전거 바구니에 태우고 다산 왕숙천변 공원을 다녀왔다. 차를 타면 고개를 내밀고 세찬 바람을 맞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답게, 자전거 바구니 속에서도 얌전히 앉아 바람을 즐겼다. 왕숙천변 공원을 달리는 동안, 모리는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털을 휘날렸다.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20킬로를 넘나드는 바람에도 녀석은 즐겁기만 하다.

나는 그런 모리를 바라보며 함께 바람을 즐긴다.

언젠가 또 다른 녀석을 바구니에 태우고, 이번엔 한강을 따라 달려보고 싶다. 그때에도 오늘처럼, 느린 자전거와 선선한 바람,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이 함께할 것이다. 삶이란 결국, 이렇게 느리게 달리며 곁을 지켜주는 존재와 함께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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