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 회고전을 보고
젊은 화가는 늘 방황했다. 화가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고, 자신만의 화풍을 찾는 일은 더더욱 힘겨웠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누가 보아도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흔적, 곧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려도 그 답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잠 못 들던 어느 깊은 밤 캔버스를 마주하던 그는 무심코 뒷면에 물을 뿌렸다. 그 위에 맺힌 물방울은 생경하면서도 신비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자, 물방울은 영롱하게 빛났다. 그는 직관적으로 알았다. ‘내가 그려야 할 세계는 이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물방울 그림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운명 같은 계시였고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물방울의 궤적을 따라 흘러갔다. 그렇게 태어난 화가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이다.
물방울은 단지 자연의 우연한 형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과 고난을 견디며 살아온 한 인간의 상처를 씻어내는 의식이었다. 16세 소년으로 홀로 월남해, 낯선 땅에서 정착해야 했던 삶. 그리고 한국전쟁의 참혹한 기억. 피와 불길, 상흔과 고독으로 얼룩진 그 세월을 그는 물방울 앞에서 씻어내고자 했다. 물은 상처를 감싸 안고, 고통을 적시며, 눈물과도 겹쳐졌다. 그가 그린 물방울은 눈물이자 동시에 치유의 물이었다.
나는 9월의 뜨거운 햇살을 뚫고 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백발의 노화가가 작품 앞에 앉아 있는 뒷모습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앞모습은 연출할 수 있지만, 뒷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 뒷모습에서 나는 인생의 무게,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선 시간의 흔적을 보았다.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었다. 유한한 물방울이 붓끝에서 영원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그 속에서 전쟁으로 얼룩진 한 세대의 상처가 맑게 정화되는 장면을 목도했다. 아픔의 눈물일 수도, 생명의 물일 수도, 혹은 목마른 자를 위한 위안의 한 방울일 수도 있는 그것은, 결국 삶의 모든 상흔을 보듬는 상징이었다.
김창열의 손끝에서 태어난 물방울은 순간의 생명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겪은 전쟁과 상처, 고독과 그리움이 씻겨 내려간 흔적이었다. 그는 유한한 물방울 속에 무한의 치유를 새겨 넣었다.
오늘 내가 본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눈물로 얼룩진 시대를 물방울로 씻어내려는 한 인간의 의지였다. 순간은 사라져도 예술은 남는다. 그리고 예술은, 상처를 치유하는 영원한 물의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