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를 타고 멀리 달려볼까 하다가도, 오늘은 하치의 차례라는 생각이 마음을 붙잡았다. 준비 과정이 번거로운 로드보다, 손만 뻗으면 곧장 데리고 나갈 수 있는 미니벨로가 나를 부른다. 그렇게 선택은 늘 미니벨로의 몫이 된다.
며칠 전 뚝섬에선 여름 끝자락의 훈훈한 기운과 초가을의 선선함이 교차했다. 그러나 오늘의 바람은 달랐다. 확실히 가을이었다. 가로수 잎은 성급히 노랗게 물들어 땅으로 흩날리고, 바람은 계절의 문턱을 건너왔다고 속삭였다. 이제부터는 라이딩의 계절, 바람이 벗이 되어주는 시간이다.
하치를 바구니에 태우자, 세상에 대한 그의 호기심은 고스란히 눈빛으로 흘러넘쳤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짧아지고, 짙게 드리웠다가 엷어지는 풍경을 두 눈에 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은, 작은 여행자가 세상과 인사하는 듯했다.
가끔은 한 발을 바구니 가장자리에 올려놓고 바람을 맞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젊은이가 스포츠카 창문 밖으로 팔을 내밀고 달리는 장면처럼 도도해 보였다. 두 발을 모두 올리고 전방을 응시할 때면, 바람을 지휘하는 작은 선장이 된 듯했다. 오늘 나의 눈길은 풍경이 아니라, 앞자리에서 바람을 만끽하는 하치에게 머물렀다.
7킬로의 작은 몸을 태운 자전거는 내게는 덤벨을 든 듯한 무게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 무게가 힘겹지 않았다. 하치는 바람을 즐기고, 나는 운동을 얻으니 서로에게 이로운 동행이었다.
낯선 경험이 어색했던지 하치는 연신 몸을 움직였다. 잠시 내려 함께 산책을 했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온 녀석은 내 품에 파고들며 다시 태워달라는 듯 속삭였다. 이번에는 바구니 속에서 한결 여유롭게 앉아, 앞을 바라보며 바람을 맞았다. 그 익숙해진 모습이 사랑스러워 웃음이 번졌다.
“하치야, 바람 맞으니 좋지?”
나는 스스로 답했다.
“그래, 이렇게 달리며 세상 구경하니 얼마나 좋으냐.”
자문자답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탯줄 달린 새끼 때부터 키워온 존재라서인지, 하치는 여전히 내겐 아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반려동물이란 본디 평생이 아이다. 사람의 손길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존재, 태생적으로 의존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의존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완성해간다. 하치는 나의 보호 아래 세상을 배워나가고, 나는 하치를 통해 순수한 호기심과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법을 배운다.
오늘의 라이딩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다. 바람을 나누고, 시선을 나누며, 두 생명이 같은 속도로 호흡한 시간이었다. 그 짧은 여정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삶의 의미란 결국 누군가와 함께 바람을 맞으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반드시 같은 종족일 필요가 없다는 것도.
때로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크기가 달라도, 사고의 방식이 다르다 해도, 같은 바람을 맞으며 같은 길을 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치와 함께한 가을 라이딩이 내게 건네준, 작지만 확실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