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필사 Day 8

길례 언니. 천경자

by 청일

필사

그림 설명


〈길례 언니〉는 천경자 화백의 대표적인 여인 초상화 중 하나로 1970년대 작으로 추정된다.

노란 옷을 입고, 커다란 흰 모자를 쓴 여인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주위를 감싸는 붉은 카라꽃과 하얀 카라꽃, 그리고 날아드는 나비들은

삶의 생명력과 덧없음을 함께 품고 있다.


그러나 그림 속 인물의 얼굴은 잿빛이다.

생기를 잃은 듯하지만, 그 눈빛은 묘하게 강하다.

고독과 체념, 그리고 무언의 품위를 동시에 담고 있다.

천경자는 화려한 색채 속에서도 늘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여인들은 언제나 상처 입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존엄’을 지켜내는 존재로 남는다.


화가는 이 인물을 단순한 모델로 그린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마주친 ‘한 사람’을 그려낸 듯하다.

살아오며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었던 단 한 사람,

그 존재를 향한 그리움이 붓끝에 머물러 있다.


나의 감상


천경자의 붓끝에 머문 여인,

〈길례 언니〉.


길례 언니는

나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굴곡진 인생에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한 날에

길례 언니가 생각났다.


그림 속 그녀의 얼굴은

한 생을 견뎌낸 사람의 얼굴이다.


천경자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여인으로, 예술가로,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홀로 버티며

자신의 색을 지켜낸 시간들.


그때 그녀는 아마,

길례 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살면서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세상의 오해와 비난에도

묵묵히 자신을 믿어줄

그 한 사람.


그림 속 언니의 눈빛에는

그리움과 체념,

그리고 사랑이 섞여 있다.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믿고 싶은 마음.

살아온 분량이 차오르면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만 하는

그 마음의 무게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며

내 안의 길례 언니를 찾아본다.

모든 걸 다 털어놓아도 좋은 사람,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사람,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


그림은 그렇게 속삭인다.

“삶은 정답이 아니라, 결이야.”


누군가는 눈물로,

누군가는 색으로,

누군가는 침묵으로

그 결을 견디며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단 한 사람을 가진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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