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기수. 르네 마그리트
필사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1898–1967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낯선 일상의 철학자’라 불린다.
그는 현실의 사물들을 낯설게 배치함으로써,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세계의 질서에
조용하지만 강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작품 속 구름, 모자, 사과, 새, 사람은
언뜻 일상의 풍경 같지만,
그 배치와 맥락이 뒤틀리는 순간
관람자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생각하는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마그리트에게 그림이란
“보이는 것 너머를 사유하게 하는 장치”였다.
그의 화면은 늘 고요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현실의 논리를 비트는
강렬한 사유의 힘이 흐른다.
〈길 잃은 기수〉는
그의 후기 작품 중에서도 특히 고독과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안개 자욱한 들판,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를 한 기수가 말을 몰며 달리고 있다.
풍경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함 속엔 불확실한 길 위를 달리는 인간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기수는 어디로 가는가?
길은 있는가, 혹은 이미 잃어버린 것인가?
마그리트는 이 그림을 통해
“의식의 길을 찾는 인간의 내면”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세계에서 ‘길’은 단순한 이동의 공간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안개가 낀 듯,
저 멀리 나무들이 흐려 보인다.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들 사이로
한 기수가 말을 몰고 달린다.
그는 채찍을 들어 말을 독려하고,
말은 기수의 뜻을 읽은 듯
그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건,
얼마나 벅차고 행복한 일인가.
목표 없이 서성이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나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말이 있고,
그 말과 함께 달릴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축복이다.
노랗게 물든 안개의 들판 위,
겨울 나무들은 잎을 잃고
가지의 윤곽만 남았다.
그 가지들은 서로 얽혀,
거대한 잎맥처럼 세상을 버티고 있다.
그 사이를 달리는 기수는
멈춤 속의 움직임,
고요 속의 의지를 보여준다.
나무는 기다림이고,
기수는 추구다.
삶은 그 둘의 경계 위에 있다.
그림 속 말은 나의 의지를,
기수는 나의 방향을 닮았다.
안개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그들처럼,
나 역시 오늘도 달리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가 향해야 할
그 길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