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 제임스 터렐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
빛으로 공간을 짓는 예술가.
그는 물질 대신 빛 그 자체를 조형의 재료로 삼는다.
터렐에게 빛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체험하는 언어다.
그의 작품은 종종 ‘빛의 예배당’이라 불린다.
관객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변하는 색을 바라보며
자신이 ‘본다’는 행위의 본질을 마주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빛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행위를 보여준다.”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는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색이 천천히, 그리고 끝없이 변해가는 빛의 공간 작품이다.
중앙의 자줏빛이
푸른색을 지나 청록으로 번지며
한 폭의 수면처럼, 혹은 한 사람의 하루처럼
부드럽게 움직인다.
경계는 사라지고,
시간은 빛의 흐름으로 바뀐다.
보는 이는 어느새
그 빛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하루를 읽게 된다.
지난여름,
불 꺼진 칠흑 같은 공간에서
터렐의 빛을 마주했었다.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만
빛은 살아 있었다.
그날의 오묘한 감각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사각의 틀 속에서
시나브로 변하는 색을 보며
나는 하루, 한 주, 한 달, 그리고 한 해를 떠올렸다.
어떤 날은 분홍빛,
또 어떤 날은 자주빛.
때로는 노란빛으로 물들기도 했다.
삶은 결코
하나의 색으로 단정할 수 없었다.
변화는 늘 예고 없이 찾아왔고,
하나의 색을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다른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때로는 안개처럼 자욱했고,
때로는 깊은 심연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색을,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돌이켜보니 그것이 바로 삶이었다.
어둠 속에 빛 하나가 태어나며 시작된 인생.
웃음과 눈물, 행복과 아픔이 뒤섞여
하나의 색으로 이어지는 시간.
황선우와 김혼비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속
한 구절을 꺼내본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예배당에 모이듯,
어떤 이들은 조용히 TV를 켜고
그 앞에 앉아 하루의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
일하고, 견디고, 또 웃는다.
터렐의 빛도 그런 리듬을 닮았다.
일요일의 고요함,
월요일의 분주함,
빛과 어둠,
안식과 노동이 교차하는 주기의 시간.
빛은 변하고,
색은 흐른다.
삶도 그렇다.
오늘의 내 하루가
어떤 빛으로 물들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 빛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늘,
나는 어떤 색으로
나를 칠할까.
그 질문을 품으며,
다시 터렐의 빛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