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3 청소년기. 힐마 아트 클린트
힐마 아프 클린트 (Hilma af Klint, 1862~1944)
힐마 아프 클린트는 스웨덴의 추상화가이자,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린다.
칸딘스키보다 앞서 추상을 시도했지만,
그녀의 작품은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녀는 예술을 단순한 ‘형태의 실험’이 아니라
영적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여겼다.
색과 선, 원과 나선은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의 대화이자,
삶의 순환과 성장을 상징하는 언어였다.
10개의 가장 큰 그림 No.3 청소년기
이 작품은 삶의 성장 단계를 그린 연작 가운데 세 번째 그림이다.
‘청소년기’라는 제목처럼,
혼란과 변화 속에서 생명력이 폭발하는 시기를 상징한다.
캔버스 위에는 노랑, 분홍, 파랑의 색채가
나선형으로 돌고 얽히며
끊임없이 확장과 순환을 반복한다.
중심부의 원은 새로운 세계의 씨앗,
혹은 자아의 탄생을 뜻한다.
그림 전체가 마치 우주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진다.
내면의 에너지가 팽창하고,
시간과 존재가 하나의 원으로 합쳐지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삶은 경주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목적지를 향해 달리느라
길가의 아름다움을 놓친다.
숨 가쁘게 오르는 동안,
정작 중요한 것들을
스쳐 지나간다.
가을이 오고
단풍이 물든다.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내 마음은 잠시 멈춘다.
단풍이 아름다운 건
그 색 때문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한 해를 온전히 살아내고
그 증거를 붉은 잎으로 내보인다.
아침 밥상 위,
하얀 쌀밥 한 그릇에도
계절이 익어 있다.
황금 들녘을 본 적 없어도
곡식은 묵묵히 자라
내 앞에 놓인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거두는
자연의 리듬은
우리의 관심 밖에서도
묵묵히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향한 질주 속에서
삶의 조각들을 흘리며 산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문득 뒤돌아섰을 때
텅 빈 길만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 한 편.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짧지만,
그 시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높이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에서도
작은 꽃 하나 볼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진짜 삶이라는 걸.
힐마 아프 클린트의 그림을 보았다.
화려한 원과 나선들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그 모습이
삶과 닮아 있었다.
삶은 정상을 향한 직선이 아니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나선이다.
그 나선의 매 순간마다
다른 빛깔의 풍경이 피어난다.
이제 스스로 깨닫게 된다.
삶은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천천히 내려오며
완성되는 길임을.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이
삶 그 자체임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걷고 싶다.
길가의 꽃에 허리를 숙이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려가는 그 길마저
사랑하며 걷고 싶다.
경주가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기록이 아니다.
그 길 위에서 내가 본 것들,
느낀 것들,
사랑한 것들…
그것이
진짜 내 삶의 조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