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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청전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의 “귀로(歸路)”(1937)

by 청일


황톳빛 언덕 위…

바람에 기울어진 소나무 한 그루.

그 아래, 등에 짐을 진 여인이

천천히… 집으로 향하고 있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그녀의 등엔

오늘 하루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아래,

작은 초가집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 터.


어서 그 짐 내려놓고,

허리 한 번 펴고,

내 새끼들… 꼭 안아주었으면.


그녀의 등짐은

단지 생업의 무게가 아니다.

가족을 향한 책임,

사랑의 무게,

그리고… 살아 있음의 흔적이다.


단출한 밥상머리,

아이들의 웃음과 밥 냄새가 있는 그 자리.

그 풍경이야말로

그녀가 살아가는 힘이다.


나도, 너도…

우리의 부모가 그랬듯,

보이지 않는 등짐 하나씩 짊어지고

저녁이 깃든 길 위를 걷는다.


언젠가,

그 짐마저 내려놓는 날이 오면

생은 고요히 마지막 빛을 머금은 채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겠지.


그래서일까…

아직은 내려놓지 못한다.

이 무게가,

살아 있음의 증거이기에.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걸어온

나의 시간들이기에.


그리고 묻는다.


“당신의 등에는 지금… 어떤 짐이 얹혀 있나요?”


그리고 바람결에 대답한다.


“그 무게가 곧,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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