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못 끝낸 이야기. 최욱경
최욱경 (Choi Wook Kyung, 1940~1985)
최욱경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추상화가로,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형태로 내면의 감정과 세계를 표현한 작가입니다.
1960~70년대 남성 중심의 미술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과 감정 언어를 밀고 나갔으며,
그의 작품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동시에 녹아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며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화풍은 단순히 서구적 모방이 아니라
한국적 감성과 내면의 서사를 결합한, 독자적인 세계를 펼쳤습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삶과 감정의 진폭’, ‘자유로움과 슬픔의 공존’이
뜨겁게 녹아 있습니다.
그의 색은 곧 그의 언어였고,
붓의 흔적 하나하나가 곧 ‘그의 이야기’였습니다.
(미처 못 끝낸 이야기)
이 작품은 1980년대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추상적이면서도 유기적인 형상들이 뒤섞인 대형 캔버스이다.
형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곡선의 흐름과 색채의 진동 속에서 꽃잎, 잎사귀, 바람결 같은
자연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붉은색과 노랑, 초록, 파랑이 자유롭게 얽혀
마치 감정의 파도들이 서로 부딪히며 피어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색의 흐름은 곧 삶의 이야기, 끝내지 못한 감정,
그리고 피어나려다 사라지는 마음의 꽃을 상징한다.
‘미처 못 끝낸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이 그림에는 완결되지 않은 감정의 파편과,
말로 다 하지 못한 인생의 조각들이 뒤섞여 있고
그것은 슬픔이자 희망이며,
무너짐이자 다시 피어남의 언어이다.
이야기꽃
바람결에 실려온 작은 씨앗 하나가 이야기를 품고 내 곁에 내려앉았다.
그 씨앗은 어느새 땅속에서 숨을 고르더니, 조용히 싹을 틔우고 꽃이 되었다.
어떤 봉우리는 희망의 이야기를 품고 피어났고,
또 어떤 봉우리는 슬픔과 그리움의 이야기를 안고 고개를 숙였다.
삶은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꽃이 모여 만들어진 정원인지도 모른다.
마음으로 빚어진 이야기들은
끝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다가,
때로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비밀로 봉인되기도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허공에 흩날려 메아리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가슴에 깊이 박혀 오래도록 남기도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오가며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세월이 흘러, 그 이야기들은 추억이 된다.
상처였던 것도, 기쁨이었던 것도 결국은 삶의 조각이 되어 시간 속에 고요히 남는다.
오늘의 이야기가 내일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비록 다 피지 못한 이야기꽃이 시들어버린다 해도,
삶은 또 다른 이야기를 피워내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