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파스빈 Jul 25. 2023

세번째로 내 생애 마지막 사표를 던졌다

두번째 직장의 악몽을 뒤로하고 세번째 직장에 안착했다. 새 직장으로 옮기자마자 회사는 사옥 오픈 기념행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서서히 새로운 기업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어떤 직장이든지 힘들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조건이 좋은대신 일은 그만큼 더 힘들고 고달팠다.


거의 매주 부서별 PT 경연대회가 있었고 밀려드는 경쟁PT를 준비하느라 각부서마다 야근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불이 꺼지지 않는 광고사관학교’라는 명칭으로 불릴만큼 엄청난 업무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침 7시  10분이면 집을 나서 만원 지하철을 환승해서 직장에 도착하면 8시 10분 전 후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퇴근하는 시간은 대부분 11시 전후 였다.


평일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내겐 아니 대부분의 직원들은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해야했다. 당시 아이들은 아직 너무도 어렸고 언제나 출근때는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출근해야했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역시나 아이들은 곤히 자고 있었다. 주말에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갈구했지만 직장은 나를 집에 머물러있게 하지 않았다.


주 6일에서 7일의 근무가 일상이 되어버린 직장생활은 나의 자유를 모두 앗아갔고 가족과 함께 식사한번 하는것이 내게 주어진 소박한 희망사항이었다. 더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점점 커가는데 되돌릴 수 없는 이 소중한 시간들을 돈을 벌겠다고 내팽게쳐 둘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아빠와의 추억이 없는 어린시절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세번째 사표를 나는 꼼지락 꼼지락 만지기 시작했다. 다시 직장을 들어가서 자유없는 삶을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갈망이 간절했다. 그래서 준비한것이 뉴질랜드 방학 캠프였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친구 형님과 함께 홈스테이를  진행하고 현지 학교와 연계한 방학캠프였다. 준비과정에서 아내와 함께 뉴질랜드로 넘어가 현지 진행 학교를 방문하고 홈스테이 집을 점검하는 등 캠프준비를했다.


아내의 방학기간에 나는 어렵사리 휴가를 내고 함께

캠프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회사를 나오기 전까지 준비를 마쳐야했다.  첨 도전하는 사업이니 알아야할 것도 많고 준비해야할 것도 많았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방학영어캠프 참가자를 모집하고 뉴질랜드로 첫번째 학생들을 보내기 까지 서류 작업부터 실행까지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퇴직 후의 새로운 삶을 준비해 나갔다


처음 방문한 오클랜드는 내게는 천국이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가져다 준 오클랜드의 모습은 마치 지상낙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속에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집들은 달력 그림에서나 봄직한 모습이었고 아파트 단지로 펼쳐진 다닥다닥 붙어사는 한국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며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그동안 직장생활에서 겪어야했던 그 단순하고도 자유없는 지난 삶들이 큰 후회로 다가섰다.


더는 인생을 허비하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내 생애 세번째! 마지막 사표에 대해서 스스로를 칭찬했다.  


(사업일정들이 구체화 되면서 두번째 방문에서 나는 뉴질랜드 이민까지 생각하며 그곳에 나온 집들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아내의 탄탄한 교육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결정이었다. 담에 이런곳에 놀러오면되지 라는 생각으로 나의 바램을 잠재웠다)


다행히 사표를 제출하고 후임자를 찾기까지 2개월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기간에 나는 휴가를 내고 다음 사업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생애 처음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고 직장 생활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세번째 사표를 당당히 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딱 40이 되는 나이에 나는 내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원장님들의 수다삼매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