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옥
서세옥(1929–2020)은 한국 수묵화의 거장으로,
붓과 먹이라는 전통의 재료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화가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이름도, 얼굴도, 신분도 없다.
그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원을 이루며 춤추는 ‘사람’ 일뿐이다.
서세옥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관계의 의미를
‘군상(群像)’이라는 주제로 평생 그려왔다.
그의 그림에는 언어보다 먼저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은 먹의 번짐 속에서 생명처럼 살아 숨 쉰다.
그에게 ‘춤추는 사람들’은 곧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상징이었다.
〈춤추는 사람들〉은 검은 먹선으로 그린 단순한 원 안에
여러 사람의 형상이 서로 손을 맞잡고 춤추는 모습을 담고 있다.
먹이 번지며 만들어낸 농담의 변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온도, 감정, 그리고 관계의 깊이를 드러낸다.
그림 중앙의 여백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향하는 중심이자 마음의 자리이다.
바깥의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고 있지만,
그들 모두는 서로의 손을 잡고 하나의 원을 완성한다.
이는 곧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인간 존재를 상징한다.
그림은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깊은 물음이 스며 있다.
몇 해째 그림 한 점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이어오고 있다.
부족하고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것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도 고요한 시간이다.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같을 수 없다.
내가 나를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타인이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매일 내 안을 바라본다.
다독이고, 용서하고, 때로는 포용하며
그림 속 나를 다시 만나본다.
오늘 아침, 서세옥의 〈춤추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손을 맞잡은 형상들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삶은 비극도 희극도 아니다.
늘 슬프지만은 않고, 늘 기쁘지만도 않은,
그저 함께 손잡고 살아가는 일일 뿐이다.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나보다
내가 들여다본 나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
타인의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내면의 나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그림 한 점으로 또 하나의 나를 마주한다.
가을빛에 물든 나의 마음은
천년의 은행나무처럼 묵묵히 계절을 받아들이며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그림 속 춤추는 사람들처럼,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나와 손을 맞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