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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

앙드레 브라질리예

by 청일


1. 작가소개


앙드레 브라질리예(André Brasilier, 1929~ )는

프랑스 회화에서 가장 부드러운 색채와 가장 고요한 리듬을 가진 작가로 불린다.

그의 그림에는 늘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잔잔하게 흐른다.


브라질리에는 자연의 풍경, 말의 우아한 움직임,

그리고 사람이 지닌 고요한 기쁨을

단순한 선과 절제된 색으로 담아낸다.

사실적인 묘사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품은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만들어내는 여운이다.


1953년 로마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주목받은 그는

한평생 ‘아름다움이 머무는 자리’를 탐색해왔다.

그의 화면은 번잡한 설명 대신 여백을 남기고,

그 여백을 통해 우리 마음속의 풍경을 천천히 불러낸다.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 초원 위의 바람,

그리고 춤추듯 흔들리는 실루엣들.

이 모든 장면은 사실 그가 말하고 싶은 하나의 진실로 이어진다.

삶은 본래 아름답고, 기쁨은 작고 단순한 곳에 머문다는 것.


브라질리에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게 된다.

그의 색은 조용하지만 따뜻하고,

그의 선은 단순하지만 깊다.

한 장의 그림이 하나의 삶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의 그림이 바로 그런 모습일 것이다.



2. 작품설명


이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흔들리고 있다.

손을 들고, 다리를 내디디고, 서로의 기운을 따라 흔들리는 푸른 실루엣들.

얼굴도 표정도 없지만, 몸짓만으로도 그들이 ‘춤추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푸른색은 물결처럼 번지고,

인물들의 윤곽은 흐릿하게 퍼져 나가며 하나의 리듬을 만든다.

마치 음악이 없는 그림 속에서 음악이 들리고,

정지된 화면 속에서 몸이 흔들리는 듯한 역동이 느껴진다.

구체적 배경은 없지만,

그 빈 공간이 오히려 자유와 환희를 한층 강조한다.


3. 나의 감상


이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오래전 내 젊음의 한 장면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고등학교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처음 맞이했던 대학의 시간들.

정해진 수업표도, 누가 짜주는 일정도 없던 그 시절은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보다

그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은 천천히 나를 변화시켰다.

친구가 생기고, 함께 웃고, 함께 떠들며

어느새 나는 대학 1년을 ‘원 없이 놀며’ 보내고 있었다.

그때의 밤과 음악, 그리고 몸을 맡겨 흔들던 리듬은

지금도 선명한 감각으로 마음에 남아 있다.


귀가 울릴 만큼 쏟아지던 디스코 음악,

가르쳐준 적 없지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춤동작들,

스피커 앞에서 온몸으로 느끼던 진동.

잠시 블루스타임이 되면 테이블에 앉아 맥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음악이 시작되면 누구보다 먼저 무대 앞으로 뛰어가던 나.

그 모든 순간은 계산도 계획도 없이

그저 ‘지금’이라는 시간에 몸을 맡기던 순수한 젊음이었다.


그래서일까.

브라질리예의 푸른 실루엣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때의 빛과 공기, 그리고 웃음 소리가

파도처럼 잔잔하게 밀려온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 시절처럼

밤새 몸을 흔들며 지내진 않는다.

하지만 하루를 아끼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의미 있게 채워가는 일

그것 또한 나만의 방식으로 춤추는 일이라 믿는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책과 글과 그림이 머무는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돌보는 일.

이 고요한 일상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기쁨을 배운다.

삶의 기쁨은 누군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하고 길어 올리는 것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뜨거움 대신

지금은 고요한 향유가 내 곁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

오래오래, 이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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