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미셸 들라크루아

by 청일


1. 작가 소개

미셸 들라크루아 (Michel Delacroix, 1933– )


미셸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화가로,

기억과 일상, 그리고 파리의 정서를 평생 화폭에 담아 온 작가다.


그의 그림에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눈 내리는 골목, 창가에 선 인물, 크리스마스의 아침처럼

사라질 듯하지만 마음속에는 오래 남는 순간들이 조용히 그려진다.


들라크루아의 작품 세계는 흔히 ‘나이브 아트’로 분류되지만,

그 안에는 단순함을 넘어선 시간에 대한 성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담겨 있다.

그의 그림은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방식을 그린다고 말할 수 있다.


2. 작품 설명


이 작품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 현재와 기억이 마주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실내에는 등을 보인 인물이 조용히 서 있고,

창밖에는 눈 내리는 도시와 크리스마스트리가 펼쳐져 있다.


인물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뒷모습에는 기다림과 회상,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의 시간이 담겨 있다.

이 인물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일 수도 있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과거의 나’ 일 수도 있다.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에서 크리스마스를

축제의 소음이 아닌 사유의 시간으로 그린다.

눈은 조용히 내리고, 도시는 멀리 있으며,

창문은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이자 연결 통로가 된다.


이 그림 속 크리스마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각자가 서 있는 자리만큼 다른 의미로 스며든다.

그래서 이 장면은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억 속 크리스마스 아침이 된다.

미셸 들라크루아, 〈무제〉를 보며


3. 나의 감상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무심코 캐럴 한곡이 입 안에서 맴돈다.

한겨울이 왔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풍경.

캐럴이 떠오르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의 제목이 무제인 것은

저마다의 크리스마스를

각자의 기억과 마음으로 채우라는 뜻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겐 설렘의 계절이고,

또 누군가에겐 조용한 회상의 시간이 될 테니.


해마다 12월이 되면

나는 한 해를 보냈다는 사실 앞에서

마음이 먼저 무거워진다.

새해를 앞둔 시기엔

그 무게가 최고조에 이르지만,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과

성탄을 맞는 사람들의 분주함 속에서

그 무거움도 잠시 옆으로 밀려난다.

상심의 12월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간다.


또 한 살을 먹는다는 허탈함,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밀물처럼 밀려드는

후회와 안타까움.

그 감정들은

성탄의 노래 속에서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래서 내게 성탄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탄생의 기쁨이기보다

12월의 우울을 잠재우는

하나의 묘약에 가깝다.


시내의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한껏 들떠 있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그 분위기를 비켜가기 어렵다.

세상은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과 음악에 맡긴 채 흘려보내고,

느닷없이 새해를 맞이한다.


카운트다운 속에서

우리는 선물처럼 주어진 새해를 환영한다.

그러나 새해의 기쁨이

언제나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나간 한 해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 한쪽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탄을 지나 제야를 넘기면

나는 어느새

육십의 세월을 건너는 나그네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남은 삶이 짧아졌다고 느끼는 지금,

하루하루는

더없이 귀해졌다.

더 알차게,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터무니없는 욕심만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성탄 이브의 아침,

나는 이 그림 앞에서

조금 더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맞이해 본다.

창밖에 내리는 눈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시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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