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에 바라본 삶을 읽고-찰스 핸디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희미해진 지도 오래다. 매일 아침 몸을 일으켜야 할 직장도, 간절히 기다려지는 주말의 설렘도 사라진 삶. 오늘도 그저 흐르는 대로 맞이한 평범한 하루 중 하나였다.
비 내리는 평일 공휴일 오후, 낮게 가라앉은 대기만큼이나 마음은 고요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R&B 선율이 방 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감싸는 사이, 나는 찰스 핸디의 유고집 《아흔에 바라본 삶》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은 아흔의 그를 향해 있었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가. 그러나 그가 남긴 문장들은 오늘을 사는 나의 손에 쥐어져, 그의 생(生)을 빌려 나의 삶을 비추어 보게 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까. 알 수 없는 그 마지막 순간을 가만히 상상해 본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뒤늦은 후회에 젖지 않기를, 남은 시간만큼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채워지기를 조심스레 기원해 본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오늘 또 한 번 새로운 날을 선물 받았다.
이 시간은 나를 다시 빚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하며 보낸 오늘이 쌓인다면, 나의 삶은 분명 어제보다 깊어지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어제의 당신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다.”
일본의 킨츠기(Kintsugi) 기법은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옻과 금가루로 이어 붙인다. 수선된 그릇은 이전보다 단단해지고, 금빛 선이 그려낸 흔적 덕분에 원래보다 훨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사람의 삶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처 입고 파편화된 영혼을 금빛으로 이어 붙이는 자리마다 깊은 서사가 스며들고, 그 흉터는 곧 그 사람만의 고유한 힘이 된다.
매일 아침,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한다. 주름진 피부와 희끗해진 머리칼의 중년 남자. 비록 금빛으로 새겨진 주름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내가 이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열세 살의 흠 없는 얼굴에는 아름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엔 아직 역사도 흔적도 없다.”
그 문장을 되새기며, 이제는 내 얼굴에 새겨진 시간의 골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떤 형용사로 기억해 주길 바라는가?’
책이 던진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다정하고, 친절하며, 배려심 깊은 사람. 거창한 명예보다는 적어도 내 가족에게만큼은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본 이들의 평가는 나의 본질을 가장 진실하게 비추는 거울일 테니까.
사계절이 흐르고 생동과 소멸이 반복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질서다. 나 또한 그 질서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때가 되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기꺼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다가올 소멸을 두려워하거나 초조해할 이유는 없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나를 증명할 형용사를 하나씩 정성껏 만들어 가면 될 일이다.
나는 결국 왔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무(無)에서 시작해 다시 무로 돌아가는 여정이지만, 나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나는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이 주는 작은 위안을 품고, 남은 삶을 자연의 섭리대로 담담히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