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숙의 공예를 보며
아침나절 스치듯 내린 봄비가 길을 닦아놓은 오후, 서울공예박물관으로 향했다. 차일피일 미루던 숙제를 끝내듯 나선 길이었으나, 전시장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미안함은 이내 경탄으로 바뀌었다.
천장에 매달린 물방울과 물고기 형상의 작품들이 공중을 유영하듯 흔들리며 가느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평일임에도 모여든 사람들의 감탄사 사이에서, 인간의 손이 가닿을 수 있는 아름다움의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가만히 가늠해 보았다.
3층 전시장, 작가의 드레스와 한복 작품들이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무수한 철사가 실핏줄처럼 촘촘히 엉겨 형태를 이루고, 그 마디마디에 박힌 비즈들은 별처럼 명멸했다. 실재하는 철사보다 더 짙은 존재감의 그림자를 바닥에 부리며 말이다.
40년이라는 시간을 오직 한 길, 철사를 엮는 일에 바쳐온 장인의 숨결이 서늘하게 전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라, 인내와 고통을 통과해 온 시간의 결실이었다.
전시장 가장 깊숙한 곳에서 붉은 드레스와 구두를 마주했다. 투명한 누군가가 그 옷을 입고 방금까지 우아한 춤을 추다 멈춘 듯, 보이지 않는 기운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득 나의 삶을 돌아본다. 한 우물을 깊게 파 내려가 정점에 다다른 그녀와 달리, 나는 여러 갈래의 길을 두루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이를 산만하다 할지 모르나, 나에게는 그 넓이가 곧 삶을 밀고 나가는 동력이었다. 수직의 깊이와 수평의 넓이. 그 정답 없는 평행선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의 조각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깨에 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나는 작품의 화려함보다 그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에 시선을 멈추었다.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빛이 만드는 찰나의 환영 같았지만, 그 빛이 사라진 뒤에도 바닥에는 담담하고 일관된 그림자의 형체만이 남았다.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어쩌면 화려한 외양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정직한 흔적을 박제하는 과정일 것이다.
아무리 찬란한 순간도 결국은 흔적으로 남는다. 긴 세월의 끝에 우리가 마주할 진실 또한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그 빛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수수한 그림자일지 모른다. 오늘 내가 본 것은 붉은 드레스의 화려함이 아니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형태를 증명해 내는 그림자의 정직함이었다.
오늘 내 카메라에 담긴 것은 붉은 드레스가 아니라, 흔들림 없이 바닥을 지키던 검은 고요였다. 그 수수한 흔적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갈 글이자, 닮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