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파스빈 Sep 22. 2024

아버지의 음악을 듣다

LP판의 추억



음악을 듣는다

아버지가 한참 젊었던 시절 들었을 그 노래를 들어본다.

기분이 묘해진다.

같은 음악을 아버지의 한참 젊은 시절보다도 더 나이 들어버린

아들이 아버지의 음악을 듣는다.


단층 작은 양옥집 안방에는 그 당시 전축이라 불리는 오디오가

한쪽 벽면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티브이 있는 집도 드물시기에 집에 그런 전축이 있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 보니 엄청난 사치였을 거다. 중학교 교사 박봉으로 장만키 어려웠을 전축을 마련하신 걸 보면 음악을 정말 좋아하셨던 거 같다.


학교도 입학하기 전 어린 나이 그 시절에 아버지는 안방에서 음악을 들으셨다. 전축이라는 커다란 기계를 통해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꽤나 컸던 거 같다.  LP판이 가지런히 꽂힌 장식장에서 LP판 하나를 꺼내서 정성스레 닦으시며 턴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으시던 모습이 지금 어렴풋 생각난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인지 나도 음악 듣는 걸 좋아했고 결혼당시

아내에게 요구했던 단 한 가지가 바로 오디오였다.

당시 인켈 오디오를 반지하 신혼집 안방에 모셔두고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40대 즈음에 온교 오디오를 장만해서 듣고 마란쯔 오디오도 안방에 두고 들었었다.

그러다 창고방에 모셔두고는 잊었었다. 이사를 할 때도 버리지 못하고 언젠가 다시 설치해서 들으리라 다짐했건만 결국 방정리를 하면서 이웃에게 모두 나눔을 해버렸다.


듣지도 안 했는데 막상 줘버리고 나니 아쉬움이 몰려왔다. 비싼 오디오를 버리고 결국 20만 원도 하지 않는 턴테이블이 갖춰진 음량기기 하나를 구입했다. 이런 걸 미니멀라이프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방 서랍장에 꽂혀있던 LP판이 드디어 음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창고에 쌓아둔 CD도 이제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기가 도착한 첫날  젊은 시절 듣던 LP판을 오래오래 들었다.


아버지가 고향집에 보관하고 계시던 LP판을 어느 해 명절에 내려가서 아버지에게서 유산처럼 받아왔었다.

십수 년을 그렇게 보관하다가 이제는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버린 LP판을 오늘에야 다시 뒤져보았다.

아버지의 추억을 하나하나 뒤적이며 아버지의 정성과 손때가 묻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LP판을 살펴보았다.

나훈아

조미미

이미자

배호 등등

가곡

경음악

그리고 칸소네라고 적혀있는 음반 하나를 발견하고 틀어보았다.

익히 들어본 곡들인데 이 곡들을 아버지가  젊은 날에 들었다는 생각을 하니 음악하나로 아버지를 소환하는듯하다.

그 시절 아버지가 즐겨 들었을 음악을 나이 들어버린 아들이 듣고 있다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먹먹해진다.

이제 내 마음속 추억으로만 남아계신 나의 아버지!

음악으로 다시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수십 년 전 아버지의 추억을 이리 소환해 놓고 나니 마음이 오갈데없이 어지러워진다.

내 아버지!

내일은 정겨운 옛 가곡을 아버지의 LP판으로 들으며 아버지를 소환해 보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무심하기로 유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