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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Feb 11. 2022

브람스 아니, 재즈를 좋아하세요?

 나이가 쌓여갈수록 변하는 것들이 많다. 식성, 체형, 가치관 등.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게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취향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나의 경우는 음악적 취향이 그랬다. 어릴 적 나는 음악 듣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이돌 노래를 좋아했고, 대학생 시절에는 힙합을 좋아했다. 취준생 시절에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같은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노래를 즐겨 들었는데, 그때마다 mp3, 음악 어플에  취향이 오롯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드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니까 청소년, 20 시절의 내 음악적 취향은 대중음악이었다. 그런데 서른 즈음인 지금의 나는 인기차트에 어떤 노래가 있는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모를 정도로 대중음악에 무심하다. 요즘 나는 브람스. 아니, 재즈를 좋아한다.

 대중음악 감상의 마지막 종착지가 재즈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음악을 많이 들어봐서 재즈까지 오게 된 것은 결단코 아니고, 사회생활에 찌들어가며 생기게 된 자연스러운 취향의 변화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트가 쿵쿵 거리는 음악을 들을 때면 어른들이 “정신 사납다.”라고 한다. 어쩐지  말을 지금은 이해할  있을  같다.

 재즈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게 된 결정적 순간은 있었다.

 업무 특성상 외근이 많았고, 통근거리가 길어서 나는 매일 하루 반나절 이상을 교통체증 속에 갇혀있었다.  막힌 도로 위에 꼼짝없이 붙잡힌 , 시간 맞춰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초조함 속에서 하염없이 정체가 풀리길 기다리고, 버텨야 하는데서 답답함을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교통체증의 중심에서 조금이나마 기분전환하고자  음악,  음악 바꿔가며 많이 들었는데, 재즈를 듣게 된  그냥 단순히 그날의 바이브 때문이었다. 반포대로  길은  막혔지만, 그날 가을 햇살이 좋아서 나는 자연스럽게 재즈를 틀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선율은 뚫리지 않는 길을 째려보듯 전방 주시하는 나에게 잠시나마 고개를 돌려 옆을 보게 만들었다. 매일  차의 번호판만 보며 지나다녔던  길의 풍경이 이렇게 이뻤구나 싶었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와 찬찬히 일렁이는 한강의 물결, 그리고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길이 이렇게 이뻤었구나 었다. 여전히 길은 막혔지만, 꽉 막힌 길 위에서 나는 해외여행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재즈의 차분한 선율이 내 마음에도 여유를 가져다준 순간이었다. 그날 내가 들었던 재즈곡이 뭐였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보았던 풍경과 감정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재즈를 즐겨 듣게 된 게.

 하루의 끝에 나는 스탠드 조명 아래서 재즈 음악을 듣는다. 정신없는 하루를 버텨낸 내 지친 심신에게 주는 일종의 보상인데, 나는 그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좋아한다. 가만히 선율을 귀담아듣다 보면 새로운 시공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술을 한잔 마시며 듣는 날은 여유로운 와인바, 공부를 하며 들을 때는 도서관, 침대 위에 누워 들을 때는 해외여행 후 호텔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을 들게 해서 좋다. 나이가 쌓여갈수록 변하는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는 바로 이거다. 내 음악적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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