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쌓여갈수록 변하는 것들이 많다. 식성, 체형, 가치관 등.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게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취향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나의 경우는 음악적 취향이 그랬다. 어릴 적 나는 음악 듣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이돌 노래를 좋아했고, 대학생 시절에는 힙합을 좋아했다. 취준생 시절에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같은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노래를 즐겨 들었는데, 그때마다 mp3, 음악 어플에 내 취향이 오롯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니까 청소년, 20대 시절의 내 음악적 취향은 대중음악이었다. 그런데 서른 즈음인 지금의 나는 인기차트에 어떤 노래가 있는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잘 모를 정도로 대중음악에 무심하다. 요즘 나는 브람스. 아니, 재즈를 좋아한다.
대중음악 감상의 마지막 종착지가 재즈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음악을 많이 들어봐서 재즈까지 오게 된 것은 결단코 아니고, 사회생활에 찌들어가며 생기게 된 자연스러운 취향의 변화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트가 쿵쿵 거리는 음악을 들을 때면 어른들이 “정신 사납다.”라고 말한다. 어쩐지 그 말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재즈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게 된 결정적 순간은 있었다.
업무 특성상 외근이 많았고, 통근거리가 길어서 나는 매일 하루 반나절 이상을 교통체증 속에 갇혀있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 꼼짝없이 붙잡힌 채, 시간 맞춰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초조함 속에서 하염없이 정체가 풀리길 기다리고, 버텨야 하는데서 답답함을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교통체증의 중심에서 조금이나마 기분전환하고자 이 음악, 저 음악 바꿔가며 많이 들었는데, 재즈를 듣게 된 건 그냥 단순히 그날의 바이브 때문이었다. 반포대로 위 길은 꽉 막혔지만, 그날 가을 햇살이 좋아서 나는 자연스럽게 재즈를 틀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선율은 뚫리지 않는 길을 째려보듯 전방 주시하는 나에게 잠시나마 고개를 돌려 옆을 보게 만들었다. 매일 앞 차의 번호판만 보며 지나다녔던 이 길의 풍경이 이렇게 이뻤구나 싶었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와 찬찬히 일렁이는 한강의 물결, 그리고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길이 이렇게 이뻤었구나 싶었다. 여전히 길은 막혔지만, 꽉 막힌 길 위에서 나는 해외여행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재즈의 차분한 선율이 내 마음에도 여유를 가져다준 순간이었다. 그날 내가 들었던 재즈곡이 뭐였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보았던 풍경과 감정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재즈를 즐겨 듣게 된 게.
하루의 끝에 나는 스탠드 조명 아래서 재즈 음악을 듣는다. 정신없는 하루를 버텨낸 내 지친 심신에게 주는 일종의 보상인데, 나는 그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좋아한다. 가만히 선율을 귀담아듣다 보면 새로운 시공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술을 한잔 마시며 듣는 날은 여유로운 와인바, 공부를 하며 들을 때는 도서관, 침대 위에 누워 들을 때는 해외여행 후 호텔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을 들게 해서 좋다. 나이가 쌓여갈수록 변하는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는 바로 이거다. 내 음악적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