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돌고 돈다. TV에는 90년대 자주 듣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거리에는 어릴 적에 입었던 통바지와 곱창밴드를 한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 풍경이 너무나 익숙해서 10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유행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유행이 돌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트렌드가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와 재회하는 것임을.
10년 전, 내가 대학생이던 때에는 <응답하라 1988> 드라마가 흥행했다. X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 시절의 풍경과 유행들이 가득했고, 나는 그게 신문물을 접한 것 마냥 신기하고 새로웠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TV를 보며 ‘그땐 그랬지’하며 추억한다. ‘이게 너희들의 시대구나’라던 드라마 속 대사처럼 요즘 마주한 유행은 우리들의 시절임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의 기억에는 없을 그 시절을 추억한다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다. ‘그땐 그랬어’ 하며 ‘라떼’를 소환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최근 포켓몬빵이 재출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켓몬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국진이빵, 박찬호 빵까지 이어졌는데, ‘포켓몬빵 안에 띠부씰만 갖고 빵은 버렸잖아요’ , ‘맞아, 띠부실 붙이는 공책도 있었잖아’ , ‘그 초코 롤빵이 제일 맛있었어’라며 다 큰 어른들이 회사에서 빵 이야기를 하며 시시닥 거리는 게 꽤 웃겼다. 어린 시절 나는 포켓몬빵을 좋아했다. 내가 살던 집 근처에는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주인아줌마, 아저씨가 엄청 무서워서 빵을 꼬집어 띠부실을 뒤집어 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띠부실만 뒤집어 포켓몬의 형태만 봤어도 돈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내 운에 맡기며 사들고 나온 빵에는 똥 손임을 인증하는 것 마냥 매번 똑같은 띠부실이 들어있었다. 어느새 주객전도가 되어 봉지를 뜯자마자 빵은 버리고 띠부실만 갖기도 했는데, 쓰레기 봉지 위에 버려진 빵을 보며 잠시나마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죄책감도 잠시, 그 시절 나는 띠부실을 모으는 게 재미있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쉬는 시간마다 각자 모은 띠부실을 자랑해야 했으니까. 포켓몬 띠부실을 종류별로 다 모은 친구를 볼 때마다 포켓몬스터 주인공 지우를 보는 것 마냥 부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꽤 값비싼 컬렉션이었네’ 싶다.
그렇게 큰 어른이가 체육복 대신 정장을 입고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을 전전한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빵 코너를 유심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쭈뼛쭈뼛 점원에게 가 ‘저…. 포켓몬빵 없어요?’하고 묻는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포켓몬빵 찾으러 다니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컸네 싶어서 나 자신이 웃겼다. 가는 곳마다 다 팔리고 없어 빈손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보니 빵 꼬집으면 상품 망가진다고 안내문을 부착한 편의점 글을 보았다. ‘그 시절, 포켓몬빵을 꼬집고 다니던 그 어른이들도 그대로 컸네’ 싶어서 그 시절의 친구들을 재회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그때와 달라진 점은 우리는 더 이상 용돈 받는 어린이가 아니라 월급 받는 어른으로 컸다는 것. 그것은 곧 내가 원하는 만큼 빵을 살 수 있는 성인이라는 것. 포켓몬빵을 한 박스씩 사서 인터넷에 인증하는 것을 보면 다 큰 어른들이 꽤 귀엽네 싶다.
유행이 돌아오는 것은 곧, 추억을 선물 받는 일이다. 일상을 살며 잊혀졌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은 낯설지만 꽤 익숙하기도 하다. 이 유행이 가면 또 한참 후에나 마주할 그 시절이겠지만, 그때는 또 어떤 느낌일까. 어떤 생각이 들까, 그때 생각한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